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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잊지 못할 금강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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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채 작성일01-03-01 16:29 조회5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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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잊지 못할 금강산이여!


1. 설레는 가슴을 안고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도 벌써 오래 되었건만, 그동안 금강산 관광은 내게 어떠한 매력도 주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금강산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뉴스를 접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다. 대회일 전후하여 회사의 워크 샾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계획이 취소되는 바람에 마지막 날에 참가 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 마라톤 클럽이 올 해 처음으로 공식 참가하는 서울마라톤 대회에 대비하여 유니폼을 새롭게 만든 터라 북한 땅에서 그 옷을 입고 뛸 생각을 하니 가슴이 이만 저만 설레는 것이 아니었다.

2. 첫째 날

아침 7시에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 모이기로 하였으므로,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택시를 탔다. 라디오에서 눈 소식을 전한다. 폭설로 온통 교통이 두절된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눈 소식이 반갑지 않았다. 미시령이든 진부령이든 고개 길을 넘어 가야 속초인데, 걱정이 앞선다. 이윤희님은 부인과 4개월 된 예쁜 딸을 동반하셨다. 만날 때마다 반가운 모습이었다. 유난히도 가족 동반이 눈에 많이 띤다.

인제를 지나서부터 내리던 눈발이 굵어 지기 시작하였다. 미시령 길은 이미 차량 접촉 사고가 발생하여 부득이 진부령 길로 가게 되어 예정 시간보다 30여분 더 걸릴 것 같다는 기사 아저씨의 안내를 들으며, 차창에 기대어 잠을 청하였다.

속초항을 출항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지금 이 배는 북방 한계선을 지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드디어 북한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긴장이 되었다. 눈을 감고 내일 있을 마라톤 대회 참가 구상을 해 본다. 날씨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춥다. 반팔 상의와 반 바지의 유니폼을 입고 뛸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바다에서는 눈이 바다 물에 녹아 버려 어느 정도 왔는지 알 수 없었는데, 도착하여 보니 고성항과 산에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통관 수속을 마치고 해금강 호텔에 짐을 풀었다. 종업원들이 모두 단정한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식사 장소로 이동하기 위하여 대기 중인 관광 버스 기사 들과 온정각에서 만난 종업원들까지 모두 그러하였다. 북한 지역이니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북한 사람이리라 생각하였다. 처음에는 긴장되어 말 조심, 행동 조심하였었다. 밥을 먹으면서 다시 한번 자세히 그들을 보니 가슴에 모두 현대 로고가 새겨진 명찰을 달고 있었다.아, 이들은 북한 사람들이 아니며, 이곳 또한 북한 관할 구역이 아니구나!

처음에는 관광 버스 기사들도 모두 북한 사람이었는데, 우리 측 사람들로 모두 바뀌었단다. 첫 날에는 결과적으로 통관검사 때에 만난 사람을 제외하고는 북한 사람을 한명도 만나지 못한 셈이었다.

3. 둘째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튼을 제치고 바깥을 보니 마라톤 출발 장소로 예정된 호텔 앞 공터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밤 사이 눈이 계속 내렸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그칠 줄 모르고 하염없이 내리는 것이었다. 무슨 한이 그리도 맺혔길래 이토록 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일까? 대회 진행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미친다. 마라톤을 위해 금강산까지 왔는데,폭설로 못 뛰고 돌아 간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야속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식사를 마치고 대회 주최자인 정동창님과 선주성님의 모습을 보니 모두 할말을 잊은 듯 싶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날만 해도 반팔 옷을 입고 뛰어도 좋을 날씨였단다. 10km 대회는 어떻게 해서라도 강행할 수 있는데, 26km 대회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현대 측에서 불도저를 동원하여 눈을 치우고 있으니 기다리는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적어도 대회 하루 전 날까지는 대회 준비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무리 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인데, 북측은 마라톤 대회를 24일 개최하도록 허가 하였으니 대회를 알리는 아치도 당일 날에 설치하도록 하였단다. 전 날 아치를 세웠다 하더라도 눈 때문에 무너져 내렸을 터이니 결과야 마찬가지가 되었겠지만, 이렇게 그들의 통제가 여전한 북한 땅을 달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눈 때문에 금강산 관광팀의 출발이 지연되었고, 이에 따라 마라톤 대회도 함께 순연되고 있었다. 그래도 달릴 수만 있다면 무슨 불만이 있을 턱이 있겠는가? 이번 대회는 마라톤 매니아가 주관하지 않았다면 취소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직 마라톤에 대한 열정이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방선희 선수(전 여자 국가 대표 마라톤 선수로, 북한의 정성옥 선수가 참가할 지 몰라 초청되었다고 한다)의 출발 신호와 함께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모두가 커다란 함성을 지르며 발걸음을 힘차게 앞으로 내디뎠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영화 JSA에서 보던 바로 그 복장을 한 북한군 병사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한결같이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손을 흔들어 반갑다는 인사를 전한다. 눈보라 때문에 가시 거리가 10m도 채 되지 않았다. 폭설 속을 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눈을 다지느라 갤로퍼가 눈길을 왕복하며 지나간다. 갤로퍼가 지나가고 나면 바퀴 자국으로 다져진 길이 생겼다. 쉼 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앞 사람이 밟고 지나간 발자국도 이내 사라져 버린다. 연신 안경을 손으로 닦으며 시야를 확보하였다. 때로는 눈이 쌓인 곳과 다져진 곳이 제대로 구분 되지 않아 달리다가 눈길에 푹 빠지기도 하였다. 만나는 북한 병사한테 시야가 제대로 안보여 달릴 수 없다고 얘기하고도 싶었다. 반환점에서의 물 한 컵과 초코파이 반개 덕분에 다시 힘이 솓는다. 만나는 주자 들에게 모두 손을 흔들며「히 ㅁ!」을 외친다. 이 곳에서 외치는 우리 들의 구호를 그 들은 또한 어떻게 들었을까?

22.5km 거리 표지판이 보였다.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삼거리가 나온다. 잠시 머뭇거리니 이쪽 길이라고 안내 해 준다. 금강산 온천장 안내 표지가 보이고, 피니시 라인이 멀리 눈에 들어왔다. 선주성님과 손을 맞잡고 감격적인 악수를 나누었다. 님들의 수고 덕택에 나는 북한 땅을 무시히 달릴 수 있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눈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말이다. 노천에서의 온천욕과 모란봉 교예단의 신기에 가까운 공연은 마라톤 완주 후에 맛보는 또 다른 별미였다.

4. 마지막 날

눈 부시리 만큼 화창하게 갠 날씨 덕분에 금강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토록 많은 눈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하고 불만 섞인 투정을 하였었는데, 백설로 단장한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는 선물까지 주실 줄 어디 상상이라도 하였는가?

이제 다시 서울로 향하려 하니 가슴이 착잡해진다. 마치 가족을 남겨 두고 오는 것 같은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호텔 해금강과 온정각의 종업원 들의 눈 빛에서, 우리를 사흘 내내 안내한 조장들의 눈 빛에서, 진한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신문도, TV도, 인터넷도 없는 곳에서, 오직 근무처와 숙소만 그것도 버스를 타고 오갈 수 밖에 없는 그 들의 모습(조장들은 금강산이라도 오르내릴 수 있고, 또한 한 달에 일주일은 자유롭게 쉴 수 있어 조금은 낫다고 했다)이 가슴 깊이 스며 들었나 보다. 배를 타고 오면서 내내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나의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아, 꿈에도 잊지 못할 금강산이여!

디지털러너 진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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