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밟고 달리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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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1-01-30 19:16 조회68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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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우리가 땅을 떠나서 살 수 있을까?
거의 날마다 어김없이 그것을 밟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그것에 대한 애착이나 고마움을 잊고 지낼 수 있다.
그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그것의 향취나 그것을 밟는 감각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면 흙을 밟고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곧바로 깨닫게 된다.
올해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고 강추위가 기승을 부려서
땅을 밟고 뛴다는 자체가 어떤 축복처럼 느껴지고 있다.
새벽에 학교운동장에 가서 뛰려고 해도 운동장 전체가 눈으로 빙판이 되어 있어
달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면서, 교통사고 위험을 감수하며 도로에선 뛸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헬스클럽으로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헬스클럽 트레드밀에서 달린다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 가지고는 오래 달리기가 불가능하다.
먼저 기본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트레드밀에 올라가 런닝타임을 42분에 맞추고 시작하면
달리는 흥미보다 단조로움 때문에 시선이 자꾸 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20분 정도 뛰고 나면 온몸에 땀이 배이게 되지만
더 이상 달린다는 것은 수없이 자신과 싸워야만 가능하다.
그곳에서 42분은 어찌 보면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달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런닝머신에서 매일 훈련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게 되면
아주 대단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분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분명히 SUB-3는 문제없이 달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어릴 적, 설렘과 기대 속에 맞이했던 설날!
아무리 어려웠던 시절이라 해도 부모님께선 설날만큼은 새 옷 한 벌을 꼭 사주셨었다.
설이 되기 몇 일전,
읍내 장터에 가셔서 우리들의 새 옷을 사오셔서 장농속에다 넣어 두시곤
"설날 아침에 새 옷을 입고 세배하거라!"
그러면 손꼽아 세면서 그것을 입을 그날을 기다려야 했었다.
학교 갔다 와서 새 옷이 궁금하면 그것을 한번 슬쩍 꺼내 보고
놀러갔다 와서도 또 한번 꺼내 보고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만져보고 싶어 했었다.
그러면 어머님은 빙긋이 웃으시면서
"그렇게도 입고 싶으냐?"
부푼 기대감속에 허락을 받고 한번 입어보면
바지자락은 발 밑으로 한 자(尺)만큼이나 더 길고
웃옷은 형님들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허펑하기만 했다.
너무 크다고 불평하면서 땡깡을 부리며 바꿔 달라고 떼쓰면,
내 후년까지 입어야 한다면서 바지 밑자락을 걷어 바늘로 줄여 주시곤 했었다.
이제 설날이 되면 새 옷을 입고 좋아했던 내 어린 모습을 상상하기 보단
그 동안 주윗 분들의 노고(勞苦)에 답례(答禮)부터 생각해야 한다.
또한 가장(家長)으로써 그 옛날 부모님처럼 어린 자식들의 설빔을 장만해야 하고
가족과 친지들의 교류를 위해
사랑스런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차를 몰고 남들보다 일찍, 지난 토요일(01/20일) 오전에 고향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한없이 펼쳐지는 설원(雪原)의 세계를 보며
자연의 순박성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곱게 빚어 뿌려놓은 순백의 세계로 아름답게 펼쳐진 전원 풍경은
인위(人爲)를 앞세운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덮고 있었다.
잘난 것, 못난 것, 좋은 것, 나쁜 것들을 가리지 않고
순백(純白)으로 있는 그대로, 그 어떤 것들도 골고루 가려 주어,
어떤 차별도 없이 자연의 순수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자연의 위대한 아름다움 앞에 세속에 오염된 내 모든 것들을 모두 덮어버리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
땅위를 달려보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폭설과 강추위로 인해 오랫동안 흙에서 달려보지 않았기에
그 감각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자리에 앉은 아내와 애들은 시골 눈썰매와 눈사람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들이 설경(雪景)에 찬탄을 보낼 때마다
흙을 밟고 달려보고 싶은 내 생각은 점점 멀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고향이 따뜻한 남쪽이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싶었다.
예상대로 밑으로 내려 갈수록 설원(雪原) 보단 정겨운 흙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성을 넘어서면서 이제 눈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집사람과 애들이 실망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다.
그것은 험한 세파(世波)와 싸우며 지내온 세월의 변방(邊方)에서
또한 삭막한 콘크리트 숲으로 합성된 황량한 야영지(野營地)에서
문명(文明)에 코 뚫린 채 이끌려 다녀야만 했던 어리석은 나에게
포근한 어머님 품처럼 다가오는 고향의 흙냄새가 생명의 향수처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여명(黎明)이 피어오르지 않아 사방은 어둑침침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타이즈에 반바지를 입고
반소매차림으로 정겨운 농로(農路)를 따라 달려 보았다.
알싸하게 마주치는 영하(零下)의 찬바람이 피부에 와 닿을 때마다
싸락싸락 했지만
땅을 밟고 뛰는 감각이 발끝을 타고 전율(戰慄)처럼 느껴져 왔다.
콘크리트로 폐쇄된 공간에서 기계 음을 들으며 달려야 했던 트레드밀과 달리
자연과 호흡하며 뛰어가는 내 자신이 대지의 향기에 흠뻑 취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내 발길 닿는 대로 달리면 그것이 시간이요, 그것이 속도였기 때문이다.
발길을 따라 허연 서리(霜)로 덮혀있는 풀섶들은 새 생명의 잉태를 준비하고 있었고
발끝에 와 채이는 돌멩이들은
이제 낯설은 이방인(異邦人)이 되어버린 나에게 정적(靜寂)을 깨우치고 있었다.
또한 홰치는 수탉 소리는 황야(荒野)를 헤매다 돌아 온 방랑자(放浪者)에게
포근한 휴식을 느끼게 하는 안식(安息)의 소리처럼 들려왔다.
탐진강을 뒤로 보내고 감내천에 이르자 봄날처럼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요며칠사이 이곳에도 혹독한 추위가 있었지만
설날을 앞두고 날씨가 풀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도 내외 였기에
달리기에는 안성마춤이였다.
군데군데 서려있는 서릿발을 밟으면서
벚꽃나무들이 양쪽으로 나란히 심어져 있는 대부뚝 위를 달려가자
억불산쪽에서
붉은 빛을 발산하며 솟아오르는 햇살이 창공(蒼空)을 향해 사선으로 수를 놓고 있었다.
냇가에는 아침 일찍부터 먹이를 찾고 있던 청둥오리들이
내 달리는 소리에 놀라 파다닥거리며 날아가고
하늘을 날던 백로(白鷺)들도 이들에게 박자를 맞춘 듯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더 높이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지은 지 몇 년이 안 된 공설운동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몇 칸 안돼는 관중석을 가지고 아담하게 자리잡은 운동장은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트랙이 우레탄으로 깔려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예상과 달리 고운 모래와 흙을 섞어서 다져놓아
내딛는 런닝화의 촉감이 사각삭하며 와 닿아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가운데 잘 다듬어 진 잔디구장은
눈처럼 내린 흰 서리가 동면(冬眠)의 마지막 백치(白齒)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듯 했다.
10회 순환(循環)하기로 마음먹고 스피드를 조금 올려 달리고 있는데
운동장 입구 쪽에서 낯익은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은 형님 이였다.
지난가을! 서울에 오셨을 때,
내가 마라톤대회 때마다 참가해서 가져온 완주메달을 보시고
두 눈이 휘둥그레지셨던 형님이다.
원래 달리기에 문외한(門外漢)이였던 내가
마라톤 한다는 것이 신기하셨는지, 자꾸 의심이 가는 투로 되묻곤 하시기에
그 때, 달리는 요령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형님도 아침마다 이곳 공설운동장에 오셔서 하루에 두 세 바퀴씩를 돌았다고 하셨다.
그러다 하루는 욕심을 내서 여덟 바퀴를 순환해버렸더니 몸살이 나서 혼이 났다고 하셨다.
그 이후부터 다섯 바퀴 이상은 절대로 돌지 않고 있지만
가까운 곳에서 어떤 마라톤 대회라도 열리게 되면 5km라도 한번 뛰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나 수도권과 달리 지방에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지고 있는 것이 현실 이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국민학교시절,
운동회 때마다 형님은 달리기를 해서 상(賞)을 타와,
잘 달리기 못한 내 기(氣)를 무참히 꺾어 버리곤 했었다.
그 때마다 나는 심통을 부려서라도
상으로 타온 형님의 공책을 거어코 뺏어버렸다.
양보심이 많았던 형님은 이따금 나와 부딪치긴 했지만,
터무니없이 우기던 내 억지를 그런 대로 잘 받아 주곤 했었다.
내가 어느 정도 속도를 내서 공설운동장 400m 트랙을 10회 순환(循環)을 하자,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던 형님은 내게로 다가와서
대견하다는 듯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진즉 마라톤을 시작했었더라면 이봉주도 이겼겠다!"
잘 뛰지도 못한 내게 하늘같은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이제 형님과 함께 집을 향해서 천천히 달려가자
산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낯설은 타관(他關)에서 언제나 그리며 살아가는 마음속의 휴식처요, 피난처인 고향마을이
바로 눈 앞에서 상큼한 흙냄새와 함께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치열한 삶의 자락에서 지쳐 불안해하고 있을 때
정겹도록 다가왔기에 심적인 안정을 찾게 해주는 포근한 생가(生家)가 있다.
그리고 어릴 적에 새알을 꺼내기 위해 수없이 오르내렸던 몇 백년 된 고목(古木)들이
아직도 변함없이 동구 밖을 지켜주고 있다.
또한 전쟁놀이를 하며 뛰놀았던 뒷동산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기에 언제나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느껴지기만 한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국을 먹으면서
팔순(八旬)을 훌쩍 넘기셔서 이제 점점 더 여위어만 가시는 어머님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땡깡 부리는 나를 달래면서 설빔 밑단을 바늘로 줄여주시던 모습이
환영(幻影)이 되어 겹치고 있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지 못한 지난날들이
깊게 패여 주름진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상경(上京)하려고
고향의 흙을 밟으며 뛰었던 런닝화를 차에 넣기 위해 뒤 트렁크를 열자
어머님은 막내인 나를 위해 고구마, 무우, 배추, 그리고 쑥떡 등을 이미 챙겨서 실어 두었다.
그것들을 값으로 따지면 얼마되지 않는 하찮은 것일지라도
어머님의 사랑의 숨결이 살아있는 것들이기에, 그 어떤 것으로 대신할 수 있으리오!
우리는 흔히 흙의 본성(本性)을 모성(母性)이라고 한다.
흙으로 인간을 창조했다지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모성일 것이다.
그 생명을 보호하며 역사의 흐름을 면면히 이어져오게한 것, 또한 그것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흙이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우리에게 경작(耕作)할 수 있는 농토와 길을 주었듯이
모성애 역시 댓가를 바라지 않고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왔기에
너무나 쉽게 망각(忘却)하며 생활하는 경향이 있다.
풋풋한 흙냄새를 실컷 맡으며, 지금 당장 땅 위를 마음껏 달려보고 싶지만
아직까지 이곳 서울에선 빙판은 녹지 않고, 이따금씩 눈발만 휘날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다시 삭막한 콘크리트로 성냥갑처럼 둘러싸인 헬스클럽에서
기계음이 들려오는 트레드밀 위를 오늘도 달릴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흙내음을 그리워하며 건강하게 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싶다.
송파세상 김현우
우리가 땅을 떠나서 살 수 있을까?
거의 날마다 어김없이 그것을 밟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그것에 대한 애착이나 고마움을 잊고 지낼 수 있다.
그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그것의 향취나 그것을 밟는 감각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면 흙을 밟고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곧바로 깨닫게 된다.
올해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고 강추위가 기승을 부려서
땅을 밟고 뛴다는 자체가 어떤 축복처럼 느껴지고 있다.
새벽에 학교운동장에 가서 뛰려고 해도 운동장 전체가 눈으로 빙판이 되어 있어
달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면서, 교통사고 위험을 감수하며 도로에선 뛸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헬스클럽으로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헬스클럽 트레드밀에서 달린다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 가지고는 오래 달리기가 불가능하다.
먼저 기본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트레드밀에 올라가 런닝타임을 42분에 맞추고 시작하면
달리는 흥미보다 단조로움 때문에 시선이 자꾸 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20분 정도 뛰고 나면 온몸에 땀이 배이게 되지만
더 이상 달린다는 것은 수없이 자신과 싸워야만 가능하다.
그곳에서 42분은 어찌 보면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달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런닝머신에서 매일 훈련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게 되면
아주 대단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분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분명히 SUB-3는 문제없이 달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어릴 적, 설렘과 기대 속에 맞이했던 설날!
아무리 어려웠던 시절이라 해도 부모님께선 설날만큼은 새 옷 한 벌을 꼭 사주셨었다.
설이 되기 몇 일전,
읍내 장터에 가셔서 우리들의 새 옷을 사오셔서 장농속에다 넣어 두시곤
"설날 아침에 새 옷을 입고 세배하거라!"
그러면 손꼽아 세면서 그것을 입을 그날을 기다려야 했었다.
학교 갔다 와서 새 옷이 궁금하면 그것을 한번 슬쩍 꺼내 보고
놀러갔다 와서도 또 한번 꺼내 보고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만져보고 싶어 했었다.
그러면 어머님은 빙긋이 웃으시면서
"그렇게도 입고 싶으냐?"
부푼 기대감속에 허락을 받고 한번 입어보면
바지자락은 발 밑으로 한 자(尺)만큼이나 더 길고
웃옷은 형님들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허펑하기만 했다.
너무 크다고 불평하면서 땡깡을 부리며 바꿔 달라고 떼쓰면,
내 후년까지 입어야 한다면서 바지 밑자락을 걷어 바늘로 줄여 주시곤 했었다.
이제 설날이 되면 새 옷을 입고 좋아했던 내 어린 모습을 상상하기 보단
그 동안 주윗 분들의 노고(勞苦)에 답례(答禮)부터 생각해야 한다.
또한 가장(家長)으로써 그 옛날 부모님처럼 어린 자식들의 설빔을 장만해야 하고
가족과 친지들의 교류를 위해
사랑스런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차를 몰고 남들보다 일찍, 지난 토요일(01/20일) 오전에 고향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한없이 펼쳐지는 설원(雪原)의 세계를 보며
자연의 순박성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곱게 빚어 뿌려놓은 순백의 세계로 아름답게 펼쳐진 전원 풍경은
인위(人爲)를 앞세운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덮고 있었다.
잘난 것, 못난 것, 좋은 것, 나쁜 것들을 가리지 않고
순백(純白)으로 있는 그대로, 그 어떤 것들도 골고루 가려 주어,
어떤 차별도 없이 자연의 순수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자연의 위대한 아름다움 앞에 세속에 오염된 내 모든 것들을 모두 덮어버리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
땅위를 달려보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폭설과 강추위로 인해 오랫동안 흙에서 달려보지 않았기에
그 감각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자리에 앉은 아내와 애들은 시골 눈썰매와 눈사람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들이 설경(雪景)에 찬탄을 보낼 때마다
흙을 밟고 달려보고 싶은 내 생각은 점점 멀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고향이 따뜻한 남쪽이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싶었다.
예상대로 밑으로 내려 갈수록 설원(雪原) 보단 정겨운 흙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성을 넘어서면서 이제 눈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집사람과 애들이 실망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다.
그것은 험한 세파(世波)와 싸우며 지내온 세월의 변방(邊方)에서
또한 삭막한 콘크리트 숲으로 합성된 황량한 야영지(野營地)에서
문명(文明)에 코 뚫린 채 이끌려 다녀야만 했던 어리석은 나에게
포근한 어머님 품처럼 다가오는 고향의 흙냄새가 생명의 향수처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여명(黎明)이 피어오르지 않아 사방은 어둑침침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타이즈에 반바지를 입고
반소매차림으로 정겨운 농로(農路)를 따라 달려 보았다.
알싸하게 마주치는 영하(零下)의 찬바람이 피부에 와 닿을 때마다
싸락싸락 했지만
땅을 밟고 뛰는 감각이 발끝을 타고 전율(戰慄)처럼 느껴져 왔다.
콘크리트로 폐쇄된 공간에서 기계 음을 들으며 달려야 했던 트레드밀과 달리
자연과 호흡하며 뛰어가는 내 자신이 대지의 향기에 흠뻑 취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내 발길 닿는 대로 달리면 그것이 시간이요, 그것이 속도였기 때문이다.
발길을 따라 허연 서리(霜)로 덮혀있는 풀섶들은 새 생명의 잉태를 준비하고 있었고
발끝에 와 채이는 돌멩이들은
이제 낯설은 이방인(異邦人)이 되어버린 나에게 정적(靜寂)을 깨우치고 있었다.
또한 홰치는 수탉 소리는 황야(荒野)를 헤매다 돌아 온 방랑자(放浪者)에게
포근한 휴식을 느끼게 하는 안식(安息)의 소리처럼 들려왔다.
탐진강을 뒤로 보내고 감내천에 이르자 봄날처럼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요며칠사이 이곳에도 혹독한 추위가 있었지만
설날을 앞두고 날씨가 풀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도 내외 였기에
달리기에는 안성마춤이였다.
군데군데 서려있는 서릿발을 밟으면서
벚꽃나무들이 양쪽으로 나란히 심어져 있는 대부뚝 위를 달려가자
억불산쪽에서
붉은 빛을 발산하며 솟아오르는 햇살이 창공(蒼空)을 향해 사선으로 수를 놓고 있었다.
냇가에는 아침 일찍부터 먹이를 찾고 있던 청둥오리들이
내 달리는 소리에 놀라 파다닥거리며 날아가고
하늘을 날던 백로(白鷺)들도 이들에게 박자를 맞춘 듯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더 높이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지은 지 몇 년이 안 된 공설운동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몇 칸 안돼는 관중석을 가지고 아담하게 자리잡은 운동장은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트랙이 우레탄으로 깔려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예상과 달리 고운 모래와 흙을 섞어서 다져놓아
내딛는 런닝화의 촉감이 사각삭하며 와 닿아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가운데 잘 다듬어 진 잔디구장은
눈처럼 내린 흰 서리가 동면(冬眠)의 마지막 백치(白齒)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듯 했다.
10회 순환(循環)하기로 마음먹고 스피드를 조금 올려 달리고 있는데
운동장 입구 쪽에서 낯익은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은 형님 이였다.
지난가을! 서울에 오셨을 때,
내가 마라톤대회 때마다 참가해서 가져온 완주메달을 보시고
두 눈이 휘둥그레지셨던 형님이다.
원래 달리기에 문외한(門外漢)이였던 내가
마라톤 한다는 것이 신기하셨는지, 자꾸 의심이 가는 투로 되묻곤 하시기에
그 때, 달리는 요령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형님도 아침마다 이곳 공설운동장에 오셔서 하루에 두 세 바퀴씩를 돌았다고 하셨다.
그러다 하루는 욕심을 내서 여덟 바퀴를 순환해버렸더니 몸살이 나서 혼이 났다고 하셨다.
그 이후부터 다섯 바퀴 이상은 절대로 돌지 않고 있지만
가까운 곳에서 어떤 마라톤 대회라도 열리게 되면 5km라도 한번 뛰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나 수도권과 달리 지방에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지고 있는 것이 현실 이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국민학교시절,
운동회 때마다 형님은 달리기를 해서 상(賞)을 타와,
잘 달리기 못한 내 기(氣)를 무참히 꺾어 버리곤 했었다.
그 때마다 나는 심통을 부려서라도
상으로 타온 형님의 공책을 거어코 뺏어버렸다.
양보심이 많았던 형님은 이따금 나와 부딪치긴 했지만,
터무니없이 우기던 내 억지를 그런 대로 잘 받아 주곤 했었다.
내가 어느 정도 속도를 내서 공설운동장 400m 트랙을 10회 순환(循環)을 하자,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던 형님은 내게로 다가와서
대견하다는 듯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진즉 마라톤을 시작했었더라면 이봉주도 이겼겠다!"
잘 뛰지도 못한 내게 하늘같은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이제 형님과 함께 집을 향해서 천천히 달려가자
산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낯설은 타관(他關)에서 언제나 그리며 살아가는 마음속의 휴식처요, 피난처인 고향마을이
바로 눈 앞에서 상큼한 흙냄새와 함께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치열한 삶의 자락에서 지쳐 불안해하고 있을 때
정겹도록 다가왔기에 심적인 안정을 찾게 해주는 포근한 생가(生家)가 있다.
그리고 어릴 적에 새알을 꺼내기 위해 수없이 오르내렸던 몇 백년 된 고목(古木)들이
아직도 변함없이 동구 밖을 지켜주고 있다.
또한 전쟁놀이를 하며 뛰놀았던 뒷동산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기에 언제나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느껴지기만 한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국을 먹으면서
팔순(八旬)을 훌쩍 넘기셔서 이제 점점 더 여위어만 가시는 어머님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땡깡 부리는 나를 달래면서 설빔 밑단을 바늘로 줄여주시던 모습이
환영(幻影)이 되어 겹치고 있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지 못한 지난날들이
깊게 패여 주름진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상경(上京)하려고
고향의 흙을 밟으며 뛰었던 런닝화를 차에 넣기 위해 뒤 트렁크를 열자
어머님은 막내인 나를 위해 고구마, 무우, 배추, 그리고 쑥떡 등을 이미 챙겨서 실어 두었다.
그것들을 값으로 따지면 얼마되지 않는 하찮은 것일지라도
어머님의 사랑의 숨결이 살아있는 것들이기에, 그 어떤 것으로 대신할 수 있으리오!
우리는 흔히 흙의 본성(本性)을 모성(母性)이라고 한다.
흙으로 인간을 창조했다지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모성일 것이다.
그 생명을 보호하며 역사의 흐름을 면면히 이어져오게한 것, 또한 그것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흙이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우리에게 경작(耕作)할 수 있는 농토와 길을 주었듯이
모성애 역시 댓가를 바라지 않고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왔기에
너무나 쉽게 망각(忘却)하며 생활하는 경향이 있다.
풋풋한 흙냄새를 실컷 맡으며, 지금 당장 땅 위를 마음껏 달려보고 싶지만
아직까지 이곳 서울에선 빙판은 녹지 않고, 이따금씩 눈발만 휘날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다시 삭막한 콘크리트로 성냥갑처럼 둘러싸인 헬스클럽에서
기계음이 들려오는 트레드밀 위를 오늘도 달릴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흙내음을 그리워하며 건강하게 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싶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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