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 결에 달려버린 5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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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1-02-08 01:40 조회8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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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있는 내 앞에는 아무도 없다.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에서 1위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간간이 뛰고있는 주자들은 그저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일뿐!
정식적인 반환점을 돌아서 달려가는 주자 중에 나를 앞지른 주자는 없다.
반환점을 향해 달려오는 많은 주자들이 손을 들어 인사를 보내면서
나를 무척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동안 많은 대회에 나가 뒤쳐져서 뛰면서 내가 선두를 부러워했던 것처럼......
지난 겨우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헬스클럽 트레드밀에서 열심히 달렸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주자들이 나를 위해 천천히 달려주기 때문일까?
1위로 달려가는 기분은 하늘을 날 것처럼 붕붕 뜨기만 했다.
탄천에 이르자 강태공 서너명이서 릴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반환점을 향하는 반달모임 주자들은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꼭 보여야할 단골 런너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왜 오늘 반달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혹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청담대교를 지나자 다시 빙판이 져 있어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놓아야 했다.
길이 거의 일자로 길게 나있기에 조금 지루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염려했던 것에 비해 노면이 미끄럽지 않고
잔설(殘雪)도 달릴 수 있도록 오솔길처럼 치워져 있어서 달리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더구나 선두를 유지한 채, 달려가는 내 발길은 가볍게만 느껴져 왔다.
강 건너 멀리 보이는 응봉의 정자도
아침부터 한가롭게 강가에서 놀고 있는 갈매기들도
앞서서 달려가는 나를 위해 환호를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끝까지 달려서 정말로 내가 1위로 골인할 수가 있을 것인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멋진 포즈를 취해야 할 것인가?
아! 이럴 때, 집사람이 카메라로 이 역사적이고, 이 감격스런 장면을 잡아야 하는 건데......
지금 당장 아이미디어팀을 초청할 수도 없는 문제이고, 어쩌면 좋단 말인가!
성수대교에 가까워지자 1위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현실로 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리기 꼴등대장이
만약 반달모임 쟁쟁한 멤버들을 제치고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하게 된다면
서울마라톤 사이트에 영광의 장면이 동영상으로 생중계될 것인가?
갖가지 환상적인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리를 스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쪽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잉! 누가 날 추월하려는 것 아냐?'
'안되지 안돼!'
나는 반항이라도 하듯 속도를 올려 보았다.
하지만 가벼운 발놀림으로 그는 이내 나와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힘을 쓸 수밖에......
그러나 역부족 이였다.
허망했다.
이봉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치고 나서 이런 기분 이였을까?
1등에 대한 모든 상상들이 사라지는 순간 이였다.
지난 겨우내 헬스클럽에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저 분은 나보다 더 지독하게 부지런히 훈련했는가 보다?
아니면 타고난 달림꾼일까?
추월해 가는 옆모습을 슬쩍 보자!
윤현수님???
야속한 사람!!!
내가 생전 처음으로 마라톤에서 1등하면 어디 덧이라도 날까?
골인 후 봅시다! 술을 콱! 많이 먹여서 대낮부터 헷갈리게 만들어 버릴테닌까!
곧이어 런너스클럽 장재신님과 어떤 분이 또 날 추월해가고 있었다.
'아이쿠! 오늘 대낮부터 술 멕일 사람 많네 그려!'
그런데 반달모임 단골 선두인 박병대님은 어디 갔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동안 달려갔다.
동호대교 근처에 이르자
박병대님이 낯익은 주자와 함께 다정하게 달리면서 다시 또 날 추월해 갔다.
'그러면 그렇지 반달의 고수님들이 나 같은 초보에게 끝까지 선두를 내줄 리가 있겠는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처음과 거의 같은 스피드로 끝까지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분들처럼 저렇게 잘 달릴 수 있을까?
평상시 어떤 방식으로 훈련을 해야 할 것인가?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고 달리기 시작한 지 이제 일 년밖에 안된 내가
너무 성급한 생각으로 고수님들의 마라톤 역정(歷程)에 접근하려는 것일까?
그렇지만 달리면서 스스로 생각을 해봐도 자신이 한없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코리언울트라런너스 2001년 첫 정기훈련 50km 달리기가
2월 4일 아침 7시 30분에 여의도에서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었다.
오랜만에 정다운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더구나 전날 저녁에 동네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핸드폰을 깜박 두고 와버렸다.
그 때문에 새벽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없어서
혹시 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할까봐 노파심마저 일고 있었다.
우려했던 것처럼 일어나야 할 시간에 깜박 잠이 들어버려 늦잠을 자고 말았다.
부리나케 마라톤 복장을 하고 차를 몰고 가
잠실 견인차량보관소옆 주차장에다 주차시키고 몸을 풀고 있었다.
그 시간에 여의도로 가봐야 모두들 출발해버린 후 일 것같아서
집에서 가까운 잠실 쪽에서 역(逆)으로 여의도로 향하다가
울트라런너스 회원들을 만나게 되면, 합류할 생각 이였다.
몸을 풀고 여의도 쪽을 향해 달리려는데
반포대교쪽에서 출발한 반달모임 선두 주자들이
반환점인 잠실수영장 부근을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보다 약 일이백미터를 앞서, 잠실 토끼굴에서 나는 출발했다.
반달 주자들은 이미 10km이상을 달려왔고
나는 그들보다 한참 앞서서 이제 막 달리기 시작했는데도 그들이 날 추월해버린 것이다.
가볍게 달려가는 반달모임 선두주자들을 뒤따르면서
그들의 주법(走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달릴 수 있을까?
그러나 달리기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내겐
그들의 주법과 내가 어떻게 다른 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들은 선천적으로 잘 달릴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가졌을 것이라는 선입견만 머리 속에서 맴돌 뿐......
이제 달려가는 앞에 반달모임 출발지인 반포대교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울트라런너스 회원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오늘 훈련이 취소되었을까? 아니면......"
그래도 무작정 여의도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끝내 만나지 못하면 서울마라톤 출발지를 반환점으로 삼고 되돌아 올 생각 이였다.
그런데 앞쪽에서 낯익은 주자 두 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울트라런너스 박문승님과 서경석님이였다.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하자,
곧바로 뒤에 이호재님과 정해성님이 나란히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방향을 틀어 그분들과 합류했다.
그런데 달려가는 자세가 너무 부드러워
내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
다른 회원들이 뒤로 달려오고 있다기에 같이 뛰다 못하면 뒷런너들과 함께 할 생각 이였다.
반달모임 주자들이 골인지점인 반포대교쪽으로 이제 속속 달려오고 있었다.
정해성님은 대부분의 주자들에게 말을 건네며 아주 편안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마주치는 런너들이 누구누구라고 설명까지 해주었다
그렇다고 달리는 속도를 늦추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스피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달리기에 대한 오랜 연륜(年輪)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다시 영동대교를 지나 빙판이 져 있는 길에 이르자,
달리면서 물을 마셔야 한다고 했지만 별로 갈증을 느낄 수 없었다.
차에다 두고 온 이온음료가 떠올라서 잠실에 가서 마실 생각 이였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마셔야 한다며 강권(强勸)하기에 한 모금만 마셨다.
잠실 토끼굴이 가까워지자 나는 스피드를 조금 내서
차에서 음료수를 먼저 꺼내 들고 기다리다 함께 나누어 마셨다.
남은 것은 허리춤에 차고 달려갔다.
이미 여러 번 달려 본 길이여서 속도를 내서 한번 달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정해성님이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스피드를 조금 줄이라고 했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얼마나 뛰어야 할 지, 정하지 않는 상태였다.
힘이 되는 데까지 달려보고 힘들면 곧바로 집으로 향할 생각 이였기 때문이다.
천호대교를 지나 광진교에 이르자 서울마라톤 지난 12월 월례대회가 생각났다.
그땐 상당히 추웠고 바람마저 세차게 불어,
뛴다는 것이 어찌 보면 정신 이상자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입춘(立春)날이여선 지, 바람도 없고 날씨마저 거의 봄날처럼 느껴졌다.
하늘이 달리기에 아주 적합한 조건을 울트라런너스 정기훈련날에 제공해준 것 같다.
수많은 여우곡절 끝에 창립된 코리언울트라런너스!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있고,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력이 있기에 그분들은 함께 달렸고 함께 뭉쳤을 것이다.
나는 아직 미약하여 정식적인 행동으로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지만
항상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할 뿐이다.
광진교를 넘어서자 얼어붙은 한강은 아름다운 설원(雪原)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 것은 흡사 하얗게 피여 있는 메밀꽃처럼 순백의 세계를 자랑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어떤 흔적을 앞세운 역사의 흐름 보단 자연의 순리에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울트라런너스 회원들과 그 순백의 세계로 빠져들어 달려가면서
마라톤을 사랑하는 순수한 그들의 열정이
어떤 흐름의 흔적 보단
한계상황을 조화롭게 극복해가려는 지혜를 중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체력 안배를 위해 무리하지 않는 속도조절과
쉴 때는 서로 먹을 것을 나누면서 격려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광암정수장쪽으로 향하는 길은 미지(未知)의 길이였다.
차를 몰고 올림픽도로를 향할 때야 여러 번 다녀보았지만,
자건거 도로인 한강변을 따라 뛰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길처럼 잔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주로(走路)가 상당히 미끄러웠다.
그 만큼 속도도 낼 수 없을 뿐더러 체력소모가 더한 것 같았다.
반환점에 이르자,
먼저 도착했던 서경석님과 박문승님이 웃으면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서로 음료수와 쵸코렛등을 나눠먹고 잠시 대화를 하다가
함께 다시 여의도를 향해 출발했다.
이제까지 시간을 체크하지 않고 달려왔기에 얼마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25km를 약 2시간정도 달렸다고 했다.
중간에 물 마신다고 쉬고, 속도조절을 한다며 스피드를 별로 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달려온 것 같았다.
천호대교 쪽으로 향하면서 거리에 대한 감각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서울마라톤 풀코스라면 반환점이 광진교 부근인데
우리는 그보다 한참 더 달려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반가운 울트라런너스 회원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윤장웅님과 이용식님은 나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출발지에서 없었던 사람이 느닷없이 반환점을 돌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지나자,
마라톤 철녀(鐵女)! 이귀자님이 새색시 같은 미소를 보내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정해성님 표현대로
우리 나라에서 이귀자님을 능가할만한 울트라 여성런너가 있을까?
비록 풀코스 기록은 약간 뒤쳐진다 할지라도 풀코스를 넘어선 거리에선
그녀를 당할 여성런너는 없을 것이다.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나고, 아무리 달려도 부상을 모르는 마라톤 철녀(鐵女)!
그러나 길을 찾아가는 길눈에는 어두워, 서바이벌 울트라마라톤에는 약점이 있다고 한다.
신(神)은 역시 공평한 것일까?
김용주님을 마지막으로 눈에 익은 주자가 보이지 않았다.
정해성님에게 채흔호님은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자
약간의 부상이 있어서 여의도로 되돌아 가셨을 것이라고 했다.
보고 싶은 그 분을 오랜만에 뵐려면 어차피 여의도까지 가야할 것 같았다.
여의도 쪽으로 향하면서 자꾸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로 50km를 뛸 수 있을 것인가?
이제까지 한번도 달려보지 않는 미답(未踏)의 거리이기 때문 이였다.
함께 뛰고 있는 울트라런너들이야
밤낮을 가리지 않고 315km를 달려서 한반도를 횡단한 무시무시한 사람들이기에
50km정도야 쉽게 내달릴 수 있겠지만
마라톤 초보인 내가 어찌 그분들과 발을 맞추면서 50km를 뛸 수가 있을까?
그런데 이상했다.
그분들의 뒤만 따라 열심히 달려서 인지 지치지가 않은 것 같았다.
같이 어느 정도까지만 발을 맞추고, 어느 시점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려고 했었는데 잠원토끼굴 매점까지 함께 달렸는데도
힘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달린 거리로 보아 어림잡아 42km는 되었을 것 같은데......
이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의도까지 함께 갔다가 다시 반환해서 잠실까지 홀로 되돌아 달려와서
차를 몰고 여의도로 갈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주로(走路) 거리 상으로 약 70km가 될 것이지만
시간을 보니 후미(後尾) 그룹과 대충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중간에 합류하게 된 정동숙님이
달리기에 잘못된 내 자세까지 바로 잡아주어 힘이 덜 들든 것처럼 느껴졌다.
노량대교 밑에 이르기 전까지 충분히 생각했던 대로 할 수 있을 것같았다.
그런데 바람귀신이 산다는 일명 풍귀터널이란 곳에 이르자
바람을 일으키는 귀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힘 빼는 귀신이 사는 지 지루하기만 했다.
그래서 풍귀(風鬼)터널이 아니라, 힘을 도둑맞는 [도력(盜力)터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함께 달리고 있던 정해성님과 이호재님은
여유 있게 연신 둘이서 대화를 나누면서 달리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50km를 즐기듯이 뛰는 모습은 분명히 한계상황을 극복하는데 달관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나는 이제 힘이 부치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을 알아차린 두 분은 내 페이스에 맞추려고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다시 잠실까지 되돌아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의도에서 멈추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루한 노량대교 밑을 통과하고 한강철교를 지나자
멀리 골인점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서울마라톤 한택희님은 이곳을 [욕심로]라 했을까?
이제 다왔다는 생각 때문에 포기는 생각할 수 없고
마지막 힘을 다해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해보겠다는 욕심이 생기기 때문일까?
참으로 기가 막힌 기지발로(機智發露)이다.
63빌딩을 지나 주차장을 끼고 돌자, 직선으로 골인지점이 환하게 보였다.
서울마라톤 공식대회라면
이곳에서 고촌댁이 배번호를 확인해서 무전기로 알려주고 있을 것인데,
오늘은 없다!
무전기를 들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던 고촌댁이 그립다.
그래! 오는 3월 4일 공식대회에선 고촌댁의 활약을 다시 또 볼 수 있겠지!
골인지점에 이르자!
정해성님이 함께 손을 잡고 골인점을 통과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서로 손을 맞잡고 높이 쳐들면서
어떨 결에 달려버린 50km의 대장정(大長程)을 기분좋게 마감할 수 있었다.
송파세상 김현우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에서 1위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간간이 뛰고있는 주자들은 그저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일뿐!
정식적인 반환점을 돌아서 달려가는 주자 중에 나를 앞지른 주자는 없다.
반환점을 향해 달려오는 많은 주자들이 손을 들어 인사를 보내면서
나를 무척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동안 많은 대회에 나가 뒤쳐져서 뛰면서 내가 선두를 부러워했던 것처럼......
지난 겨우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헬스클럽 트레드밀에서 열심히 달렸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주자들이 나를 위해 천천히 달려주기 때문일까?
1위로 달려가는 기분은 하늘을 날 것처럼 붕붕 뜨기만 했다.
탄천에 이르자 강태공 서너명이서 릴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반환점을 향하는 반달모임 주자들은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꼭 보여야할 단골 런너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왜 오늘 반달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혹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청담대교를 지나자 다시 빙판이 져 있어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놓아야 했다.
길이 거의 일자로 길게 나있기에 조금 지루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염려했던 것에 비해 노면이 미끄럽지 않고
잔설(殘雪)도 달릴 수 있도록 오솔길처럼 치워져 있어서 달리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더구나 선두를 유지한 채, 달려가는 내 발길은 가볍게만 느껴져 왔다.
강 건너 멀리 보이는 응봉의 정자도
아침부터 한가롭게 강가에서 놀고 있는 갈매기들도
앞서서 달려가는 나를 위해 환호를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끝까지 달려서 정말로 내가 1위로 골인할 수가 있을 것인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멋진 포즈를 취해야 할 것인가?
아! 이럴 때, 집사람이 카메라로 이 역사적이고, 이 감격스런 장면을 잡아야 하는 건데......
지금 당장 아이미디어팀을 초청할 수도 없는 문제이고, 어쩌면 좋단 말인가!
성수대교에 가까워지자 1위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현실로 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리기 꼴등대장이
만약 반달모임 쟁쟁한 멤버들을 제치고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하게 된다면
서울마라톤 사이트에 영광의 장면이 동영상으로 생중계될 것인가?
갖가지 환상적인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리를 스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쪽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잉! 누가 날 추월하려는 것 아냐?'
'안되지 안돼!'
나는 반항이라도 하듯 속도를 올려 보았다.
하지만 가벼운 발놀림으로 그는 이내 나와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힘을 쓸 수밖에......
그러나 역부족 이였다.
허망했다.
이봉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치고 나서 이런 기분 이였을까?
1등에 대한 모든 상상들이 사라지는 순간 이였다.
지난 겨우내 헬스클럽에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저 분은 나보다 더 지독하게 부지런히 훈련했는가 보다?
아니면 타고난 달림꾼일까?
추월해 가는 옆모습을 슬쩍 보자!
윤현수님???
야속한 사람!!!
내가 생전 처음으로 마라톤에서 1등하면 어디 덧이라도 날까?
골인 후 봅시다! 술을 콱! 많이 먹여서 대낮부터 헷갈리게 만들어 버릴테닌까!
곧이어 런너스클럽 장재신님과 어떤 분이 또 날 추월해가고 있었다.
'아이쿠! 오늘 대낮부터 술 멕일 사람 많네 그려!'
그런데 반달모임 단골 선두인 박병대님은 어디 갔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동안 달려갔다.
동호대교 근처에 이르자
박병대님이 낯익은 주자와 함께 다정하게 달리면서 다시 또 날 추월해 갔다.
'그러면 그렇지 반달의 고수님들이 나 같은 초보에게 끝까지 선두를 내줄 리가 있겠는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처음과 거의 같은 스피드로 끝까지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분들처럼 저렇게 잘 달릴 수 있을까?
평상시 어떤 방식으로 훈련을 해야 할 것인가?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고 달리기 시작한 지 이제 일 년밖에 안된 내가
너무 성급한 생각으로 고수님들의 마라톤 역정(歷程)에 접근하려는 것일까?
그렇지만 달리면서 스스로 생각을 해봐도 자신이 한없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코리언울트라런너스 2001년 첫 정기훈련 50km 달리기가
2월 4일 아침 7시 30분에 여의도에서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었다.
오랜만에 정다운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더구나 전날 저녁에 동네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핸드폰을 깜박 두고 와버렸다.
그 때문에 새벽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없어서
혹시 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할까봐 노파심마저 일고 있었다.
우려했던 것처럼 일어나야 할 시간에 깜박 잠이 들어버려 늦잠을 자고 말았다.
부리나케 마라톤 복장을 하고 차를 몰고 가
잠실 견인차량보관소옆 주차장에다 주차시키고 몸을 풀고 있었다.
그 시간에 여의도로 가봐야 모두들 출발해버린 후 일 것같아서
집에서 가까운 잠실 쪽에서 역(逆)으로 여의도로 향하다가
울트라런너스 회원들을 만나게 되면, 합류할 생각 이였다.
몸을 풀고 여의도 쪽을 향해 달리려는데
반포대교쪽에서 출발한 반달모임 선두 주자들이
반환점인 잠실수영장 부근을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보다 약 일이백미터를 앞서, 잠실 토끼굴에서 나는 출발했다.
반달 주자들은 이미 10km이상을 달려왔고
나는 그들보다 한참 앞서서 이제 막 달리기 시작했는데도 그들이 날 추월해버린 것이다.
가볍게 달려가는 반달모임 선두주자들을 뒤따르면서
그들의 주법(走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달릴 수 있을까?
그러나 달리기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내겐
그들의 주법과 내가 어떻게 다른 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들은 선천적으로 잘 달릴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가졌을 것이라는 선입견만 머리 속에서 맴돌 뿐......
이제 달려가는 앞에 반달모임 출발지인 반포대교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울트라런너스 회원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오늘 훈련이 취소되었을까? 아니면......"
그래도 무작정 여의도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끝내 만나지 못하면 서울마라톤 출발지를 반환점으로 삼고 되돌아 올 생각 이였다.
그런데 앞쪽에서 낯익은 주자 두 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울트라런너스 박문승님과 서경석님이였다.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하자,
곧바로 뒤에 이호재님과 정해성님이 나란히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방향을 틀어 그분들과 합류했다.
그런데 달려가는 자세가 너무 부드러워
내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
다른 회원들이 뒤로 달려오고 있다기에 같이 뛰다 못하면 뒷런너들과 함께 할 생각 이였다.
반달모임 주자들이 골인지점인 반포대교쪽으로 이제 속속 달려오고 있었다.
정해성님은 대부분의 주자들에게 말을 건네며 아주 편안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마주치는 런너들이 누구누구라고 설명까지 해주었다
그렇다고 달리는 속도를 늦추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스피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달리기에 대한 오랜 연륜(年輪)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다시 영동대교를 지나 빙판이 져 있는 길에 이르자,
달리면서 물을 마셔야 한다고 했지만 별로 갈증을 느낄 수 없었다.
차에다 두고 온 이온음료가 떠올라서 잠실에 가서 마실 생각 이였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마셔야 한다며 강권(强勸)하기에 한 모금만 마셨다.
잠실 토끼굴이 가까워지자 나는 스피드를 조금 내서
차에서 음료수를 먼저 꺼내 들고 기다리다 함께 나누어 마셨다.
남은 것은 허리춤에 차고 달려갔다.
이미 여러 번 달려 본 길이여서 속도를 내서 한번 달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정해성님이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스피드를 조금 줄이라고 했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얼마나 뛰어야 할 지, 정하지 않는 상태였다.
힘이 되는 데까지 달려보고 힘들면 곧바로 집으로 향할 생각 이였기 때문이다.
천호대교를 지나 광진교에 이르자 서울마라톤 지난 12월 월례대회가 생각났다.
그땐 상당히 추웠고 바람마저 세차게 불어,
뛴다는 것이 어찌 보면 정신 이상자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입춘(立春)날이여선 지, 바람도 없고 날씨마저 거의 봄날처럼 느껴졌다.
하늘이 달리기에 아주 적합한 조건을 울트라런너스 정기훈련날에 제공해준 것 같다.
수많은 여우곡절 끝에 창립된 코리언울트라런너스!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있고,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력이 있기에 그분들은 함께 달렸고 함께 뭉쳤을 것이다.
나는 아직 미약하여 정식적인 행동으로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지만
항상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할 뿐이다.
광진교를 넘어서자 얼어붙은 한강은 아름다운 설원(雪原)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 것은 흡사 하얗게 피여 있는 메밀꽃처럼 순백의 세계를 자랑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어떤 흔적을 앞세운 역사의 흐름 보단 자연의 순리에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울트라런너스 회원들과 그 순백의 세계로 빠져들어 달려가면서
마라톤을 사랑하는 순수한 그들의 열정이
어떤 흐름의 흔적 보단
한계상황을 조화롭게 극복해가려는 지혜를 중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체력 안배를 위해 무리하지 않는 속도조절과
쉴 때는 서로 먹을 것을 나누면서 격려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광암정수장쪽으로 향하는 길은 미지(未知)의 길이였다.
차를 몰고 올림픽도로를 향할 때야 여러 번 다녀보았지만,
자건거 도로인 한강변을 따라 뛰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길처럼 잔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주로(走路)가 상당히 미끄러웠다.
그 만큼 속도도 낼 수 없을 뿐더러 체력소모가 더한 것 같았다.
반환점에 이르자,
먼저 도착했던 서경석님과 박문승님이 웃으면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서로 음료수와 쵸코렛등을 나눠먹고 잠시 대화를 하다가
함께 다시 여의도를 향해 출발했다.
이제까지 시간을 체크하지 않고 달려왔기에 얼마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25km를 약 2시간정도 달렸다고 했다.
중간에 물 마신다고 쉬고, 속도조절을 한다며 스피드를 별로 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달려온 것 같았다.
천호대교 쪽으로 향하면서 거리에 대한 감각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서울마라톤 풀코스라면 반환점이 광진교 부근인데
우리는 그보다 한참 더 달려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반가운 울트라런너스 회원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윤장웅님과 이용식님은 나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출발지에서 없었던 사람이 느닷없이 반환점을 돌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지나자,
마라톤 철녀(鐵女)! 이귀자님이 새색시 같은 미소를 보내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정해성님 표현대로
우리 나라에서 이귀자님을 능가할만한 울트라 여성런너가 있을까?
비록 풀코스 기록은 약간 뒤쳐진다 할지라도 풀코스를 넘어선 거리에선
그녀를 당할 여성런너는 없을 것이다.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나고, 아무리 달려도 부상을 모르는 마라톤 철녀(鐵女)!
그러나 길을 찾아가는 길눈에는 어두워, 서바이벌 울트라마라톤에는 약점이 있다고 한다.
신(神)은 역시 공평한 것일까?
김용주님을 마지막으로 눈에 익은 주자가 보이지 않았다.
정해성님에게 채흔호님은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자
약간의 부상이 있어서 여의도로 되돌아 가셨을 것이라고 했다.
보고 싶은 그 분을 오랜만에 뵐려면 어차피 여의도까지 가야할 것 같았다.
여의도 쪽으로 향하면서 자꾸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로 50km를 뛸 수 있을 것인가?
이제까지 한번도 달려보지 않는 미답(未踏)의 거리이기 때문 이였다.
함께 뛰고 있는 울트라런너들이야
밤낮을 가리지 않고 315km를 달려서 한반도를 횡단한 무시무시한 사람들이기에
50km정도야 쉽게 내달릴 수 있겠지만
마라톤 초보인 내가 어찌 그분들과 발을 맞추면서 50km를 뛸 수가 있을까?
그런데 이상했다.
그분들의 뒤만 따라 열심히 달려서 인지 지치지가 않은 것 같았다.
같이 어느 정도까지만 발을 맞추고, 어느 시점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려고 했었는데 잠원토끼굴 매점까지 함께 달렸는데도
힘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달린 거리로 보아 어림잡아 42km는 되었을 것 같은데......
이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의도까지 함께 갔다가 다시 반환해서 잠실까지 홀로 되돌아 달려와서
차를 몰고 여의도로 갈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주로(走路) 거리 상으로 약 70km가 될 것이지만
시간을 보니 후미(後尾) 그룹과 대충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중간에 합류하게 된 정동숙님이
달리기에 잘못된 내 자세까지 바로 잡아주어 힘이 덜 들든 것처럼 느껴졌다.
노량대교 밑에 이르기 전까지 충분히 생각했던 대로 할 수 있을 것같았다.
그런데 바람귀신이 산다는 일명 풍귀터널이란 곳에 이르자
바람을 일으키는 귀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힘 빼는 귀신이 사는 지 지루하기만 했다.
그래서 풍귀(風鬼)터널이 아니라, 힘을 도둑맞는 [도력(盜力)터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함께 달리고 있던 정해성님과 이호재님은
여유 있게 연신 둘이서 대화를 나누면서 달리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50km를 즐기듯이 뛰는 모습은 분명히 한계상황을 극복하는데 달관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나는 이제 힘이 부치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을 알아차린 두 분은 내 페이스에 맞추려고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다시 잠실까지 되돌아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의도에서 멈추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루한 노량대교 밑을 통과하고 한강철교를 지나자
멀리 골인점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서울마라톤 한택희님은 이곳을 [욕심로]라 했을까?
이제 다왔다는 생각 때문에 포기는 생각할 수 없고
마지막 힘을 다해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해보겠다는 욕심이 생기기 때문일까?
참으로 기가 막힌 기지발로(機智發露)이다.
63빌딩을 지나 주차장을 끼고 돌자, 직선으로 골인지점이 환하게 보였다.
서울마라톤 공식대회라면
이곳에서 고촌댁이 배번호를 확인해서 무전기로 알려주고 있을 것인데,
오늘은 없다!
무전기를 들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던 고촌댁이 그립다.
그래! 오는 3월 4일 공식대회에선 고촌댁의 활약을 다시 또 볼 수 있겠지!
골인지점에 이르자!
정해성님이 함께 손을 잡고 골인점을 통과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서로 손을 맞잡고 높이 쳐들면서
어떨 결에 달려버린 50km의 대장정(大長程)을 기분좋게 마감할 수 있었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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