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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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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건수 작성일00-08-23 23:08 조회2,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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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김건수 일간스포츠 사진부장


아침에 일찍 출근하여 책상 정리를 하고 컴퓨터를 켜본다. 조선일보는 하프마라톤 때문에 골치가 아픈가 보다. 아침부터 다투는 글을 읽으면 왠지 하루가 무겁게 느껴진다.

서울마라톤으로 사이트를 옮겨본다. '81세의 젊은 패기'-유 복용선생님의 글이 눈길을 확 끈다. 예전에 서울 마라톤에서 마지막으로 들어오신 유 선생님의 소식을 접한 적이 있어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선생님의 글을 대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여명과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신 글 속에서 님의 얼굴을 그려본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박완서님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란 수필이 생각이 난다. 작가는 일상 속에서 개인적인 찌들음을 별난 충동을 통해서 삶의 무게로 되찾고 싶어한다. 달리는 이의 무미건조함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잔잔한 감동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인간의 존재의 숭고함을 꼴찌로 달리는 이의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며, 연속되고 고단한 움직임 통해서 그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독자를 감동시킨 것은 마지막으로 달리는 주자의 고독을 통해서 우직한 스포츠라고만 느꼈던 운동을 더 육친애적인 의미로 승화하고있다는 점이다.

박완서님은 당시 번잡한 삶의 단편 속에서 마라토너를 바라다 보았지만, 만일 추위가 가시지 않은 2000년 3월 5일 서울마라톤에서 8시간 01분 18초로 사력을 다해 꼴찌로 완주를 한, 유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면 어떠하였을까 생각해본다.

기다리다 지쳐 뿌리를 내릴만한 지루한 시간 동안, 유 선생님은 80평생의 의미를 한 발자국씩 디디며 정직한 고통을 견뎌낸 것이다.

감동이란 무엇일까? 글자대로 하면 느낌의 움직임, 누구는 정서의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우리들은 어쩌면 숨겨진 감동을 찾으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나 산재한 감동 속에서 그 의미를 축소하거나 타기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되짚어서 혹자는 "노친네가 무슨 망령이 들어서 마라톤을 하고 난리야"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야말로 감동의 의미를 상실한 체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아닐까? 나는 적어도 인생의 모든 부분은 아니더라도 삶의 한 줄기만은 대상을 감동스럽게 바라보며 그 모습에 빠져 와락 울고 싶은 충동을 숨기지 않고 살고싶다.

유 선생님은 거친 바람과 고통을 이기면서 침묵으로 삶의 의미를 아무조건 없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뛰었던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꼴찌란 어떻게 보면 죽음보다도 받아들이기가 힘든 모습이리라. 얼마 전 어느 어린 여학생의 아파트 투신 자살을 보고 얼마나 이사회가 야비하게 흘러가는가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음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시대상황 속에 이미 감동이란 말은 죽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숨막히는 일상이다.

그러나 어두움이 있어야 빛의 의미가 소중하듯, 이 사회 아주 작은 한구석에서는 남들과는 상관없이 그들만의 잔잔한 색깔로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 가는 이들이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은 우리 가슴속에 깊이 숨어 잠들어 있는 '큰바위 얼굴'을 깨워낸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인생의 숙제가 무엇인지를 담담한 미소로 알려준다. 유 복용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리라.

오늘도 유 선생님은 스스로 새벽을 열어 달리며 우리에게 산소 같은 청년으로 다가오고 있다. 참 소중한 분이다......

나는 그분이 이룩한 꼴찌에 갈채를 보낸다.

20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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