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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冬將軍)과 한강의 한판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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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석 작성일04-01-31 11:05 조회1,0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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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은 복(福)을 좋아하는 민족인가 보다. 복을 많이 받으라는 것이 새해인사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가 반복된 고난과 혼돈으로 얼룩진 불행한 역사였기에 행복에 대한 갈망이 어느 민족보다 가슴깊이 사무친 것 같다.
바쁜 세상에서 한해에 신정, 구정 새해를 두 차례 맞이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같은 인사를 두 번씩이나 나누어야 한다. 좀 어색하기도하나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10번, 20번 주고 받는다해도 나쁠 것은 없다. 복을 많이 받아 모두들 행복해지며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하기만 한다면...

설 연휴 첫날아침, 어제 내린 눈으로 길은 빙판이 되어 미끄럽다. 아침 기온이 영하 15.3℃ 동장군이 참았던 위세를 떨치나 보다. 새해라 해서 새로운 것은 달력이외는 없는 것 같다. 모처럼의 연휴라 긴장을 풀고 감상에 잠겨 있을 수도 없고, 날씨가 차다해서 움추릴수는 없다.

동네에서 10km를 뛸까? 망설이다가 혹한(酷寒)에 한강을 달리는 매력과 맛에 이끌려 발길이 한강으로 향했다. 한강의 체감온도는 영하 20℃를 훌쩍 넘는 듯 몸이 오싹해지며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동장군과 한판 씨름을 벌려보자!』 행선지를 반달 하프 반환점으로 정하고 잠수교를 넘어섰다. 강바람이 제법 세차게 휘몰아치기는 하나 등뒤에서 밀어주니 한결 가볍게 밀려나간다. 돌아올 때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눈에 덮인 강변길은 카펫트 위를 달리듯 촉감이 푹신하여 사뿐 사뿐 부드럽게 달리니 "달리는 기분 상쾌도하다..."라는 노래의 가사가 새삼 실감난다. 넓게 펼쳐진 아침 강변의 설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유난히도 빛나고 아름답다.
행여나 미끄러져 넘어질까봐 평소보다 허리와 상체를 세워 하중을 최소화하여 발목의 긴장을 풀고, 중심(中心)과 중심(重心)의 균형과 조화에 더 많은 신경이 쏠린다.
간간이 지나가는 런너는 입을 다물고 손으로만 인사를 나눈다. 맞바람에 힘겨워하는 것 같다. 눈만 보이고 얼굴을 가린 사람, 추위에 표정이 이그러져 고개를 숙이고 달리는 사람, 누가 억지로 떠밀어 낸 것도 아닌데 이 추위에 저 고생을 자초하고 있으니 정신이 나간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나도 그런 사람이란 말인가?
5년전 대학 친구는 내가 풀코스를 완주한다니 "나이가 몇 살인데 미쳐도 단단히 미쳤고, 정신나간 짓을 한다."고 비웃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3년 전에 술로 인해 세상을 먼저 떠났다.
결코 정신이 나간 사람은 아니지! 강인한 정신력을 다지려고 아름다운 옥(玉)을 갈 듯 자신을 다스리는 자기관리에 성실한 사람일뿐이다.

어느새 동호대교를 지나고 있다. 혹독한 추위도 아랑곳없이 몸 안은 봄을 지나 초여름에 접어든 듯 등에서 약간의 땀이 비친다. 인체 생리는 정직하고 정확하다.
부탁 받은 주례사의 문안을 생각해본다. 마라톤을 달리다 만난 두 젊은이가 주례를 부탁했기에 오래도록 가슴에 담을 주례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내와 지구력으로 함께 마라톤을 완주하는 건강하고 다정한 부부에게는 이혼이란 단어는 없을 것이다.

탄천을 지나 잠실강변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강풍(强風)이 휘몰아쳐 몸을 추수리기가 힘겨워진다. 길에 쌓인 눈이 안개처럼 휘날린다. 반달 반환점이 저 멀리 바라보이나 그 곳을 돌아오기가 막막해진다. 반환점을 도는 순간 억센 바람에 숨이 막혀 잠시 주춤거린다. 몸은 다시 겨울로 되돌아가 한기가 감돌며 떨린다. 매점으로 가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셨다. 한모금...마시는 커피의 맛, 평소 커피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껏 커피가 그렇게 맛이 있어 본 적이 없다.
화장실에 들렀더니 온풍기가 돌고 있다. 구세주를 만난 듯 한참동안 몸을 녹인 후 초코렛 한 개를 입에 물고 강변으로 나갔다. 매점에 들러 뜨거운 꿀차 한잔을 더 마시고 든든해진 기분으로 다시 달렸다.
유람선 선착장 옆을 지나니 바람이 사정없이 얼마나 세게 밀어치는지 몸이 옆으로, 뒤로 밀린다. 이러다 한강으로 날아가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겁도 난다. 노출된 얼굴피부가 따갑다못해 얼어붙는 듯 굳어지며 눈을 깜박이기가 어색해진다. 코끝이 찡하더니 떨어져나갈 듯 호흡이 힘겨워진다. 장갑 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달리니 호흡도 힘들고 제대로 달릴 수도 없다. 얼굴표면의 모세혈관들이 동파되지나 않을지.....
엉금엉금 기어가듯이 달리니 체온은 더 떨어져 몹시 추워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동장군에게 질 수밖에...그럴 수는 없다! 비상수단을 동원해야겠다.
바람에 대항하며 체온을 올리기 위해 근육세포의 보일러(미토콘드리아)의 연소를 촉진시켜 피치를 올려보자! 팔과 발놀림에 가속이 붙는다. 잘 뛰는 젊은 런너에 비하면 스피드라 할 수도 없지만 내 나름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본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탄천을 향해 좌측으로 돌아서니 바람이 누그러져 살 것만 같다. 햇살이 비치는 양지가 고맙기도 하다. 계속 같은 페이스로 달렸으며 영동대교와 성수대교 부근에서 강한 맞바람이 몇 차례 가로막았으나 무난히 넘겼고, 이제 몸 속은 봄으로 돌아섰다.

잠원 고압탑 옆을 포커스마라톤의 정영주 대표님과 문정오님이 가볍게 달려온다. 잠시 멈추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반포대교로 향한다. 서서히 속도는 떨어져 힘겨워졌지만 다 왔다는 안도감과 이 어려움을 해냈다는 자부심과 감동이 화산처럼 솟구친다. 뜨거운 환희와 함께 삶을 위한 자신감과 활력소가 가슴깊이 쌓여진다. 이런 모습으로 반달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동장군과의 한판 씨름에서 용감한 승자(勝者)가 된 뿌듯한 기분이다.
참된 기쁨과 행복감은 힘겨운 고난을 통해 주어지는 값진 선물인가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간다.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 마라톤의 피니쉬라인은 감동과 감격, 밝은 환희의 축제의 마당을 이루는데,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왜 두려움과 슬픔으로 받아드려야만 하는 것인지? 하늘이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드릴 때 우리가 지니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기록만이 남을 것이다.
어떤 삶의 기록을 남기며 떠나야할까?
자신의 삶에 충실하여 아내와 자식들에게 좋은 남편 고마운 아빠가 되며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과 사회에 봉사도 하면서 부끄러움과 후회함이 없는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인생의 종점(終點)은 마라톤의 피니쉬라인처럼 감사와 감격과 환희의 순간으로 다가오리라 느껴진다.

마라톤대회가 참가자들에게 자기개혁의 변화와 삶의 원동력을 나누는 값진 축제의 장(場)이 된다면 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좋은 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바람직한 봉사일 것이다. 7회 서울마라톤대회를 위해 마라톤이 좋아서 묵묵히 자기희생과 헌신적인 수고를 하는 스텝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자.
서울마라톤대회가 첫 완주자에게 그리고 서울마라톤으로 인해 마라톤과의 인연을 맺은 많은 달림이들에게 풀뿌리마라톤의 포근한 정든 고향이 된다면 이 많은 어려움과 힘겨움이 보람스러움으로 거두어질 날이 오지 않을까...

동장군과의 한판 씨름에서 성취한 승자의 자신감, 용기와 의욕으로 삶을 엮어 나간다면 이보다 더 큰 복(福)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마라톤은 하늘이 내리는 축복이며 행복의 상징이다.

서울마라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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