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년 전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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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4-01-15 17:11 조회6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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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년 전의 약속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24 년 전,
저는 신발을 팔려고 뉴질랜드의 북 섬, 오클랜드 공항에 내려 웰링턴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4 년 전이면 1980 년으로 우리 나라는 이제 막 경제 성장의 바퀴에
가속을 붙이려 온 나라가 일하자 ! 일을 하자 ! 수출하자 ! 수출만이
살길이다 ! 라고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할 때이었습니다
일을 하는데 일요일도 없었고, 잘 나가는 회사라야 한 달에 두 번,
첫째, 셋째 일요일을 쉬는 뭐 그런 식이었지요.
주말이라는 개념도 없이 일을 하던 그 때, 쉬는 날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주말 활동도 없었던 , 지금 같으면 상상도 안되던 그런 시대이었습니다
공항 대합실 제 옆에서 허름한 청바지를 입고, 누가 보아도 허드레 일을 하는
그런 복장의 한 젊은이를 저는 아까부터 깊은 호기심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지금 이 젊은이는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주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
이었습니다. 즉 그는 나랑 같이 웰링턴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그는 저의 기준에 보면 도저히 비행기를 타는 그런 복장이 아니었습니다
단독주택 하수구 막힌 곳 뚫어주는 수리공 같은 복장인데
그가 어깨에 짊어진 다 닳아 떨어진 나이론 가방도 그렇고
가방 속에 든 내용물도 울퉁불퉁, 장도리, 렌찌, 망치, 대패 뭐 이런 것들인 양,
가방의 형태 겉모습을 보면 깨끗한 서류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나는 궁금증이 있어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곳 오클랜드에 사시는 것 같은데 웰링턴에는 어떤 일로 가시느냐고..
그러자 그 젊은이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자기의 고객 부엌 씽크대가 고장나서 그것 고쳐주려고 내려간다고...
자기는 씽크대나 부엌 하수구 같은 곳 수리 전문가라고...
이 말을 들은 저는 혼란에 빠졌지요
첫째, 이렇게 허름하니 닳아 구멍난 청바지를 입고도 당당하게 비행기를 타는
이 나라는 도대체 어느 나라인가 ? 그 당시 저의 기준에는 이웃에
나들이를 간다거나, 특히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넥타이에 양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이 잘 안되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둘째, 아니, 하수구 막힌 곳을 뚫는데 사람을 쓰고, 그것도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기술자를 불러서 고친다면 이 사람 일당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그 당시 우리네들 서민은 집안에 뭐가 고장 나면 주변에 있는 것 가지고
적당히 막고 떼우고 하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물도 수도꼭지에서 나와 금방 땅속으로 들어가는데 막힐 관이 어디 있으며
구멍 나면 모양 볼 것 없이 그냥 테이프로 쳐 바르면 되었지요.
지금이야 우리의 수준이 높아져서 어림없는 이야기지만...
좌우지간 그렇게 이 젊은이하고의 첫 대면에 문화적 충격을 단단히 받고서
뉴질랜드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뉴질랜드의 대 자연이
저에게 준 충격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나라에는 자연보호라는 개념이 없었고, 사회적 질서 의식도
극히 초보적 단계에 있었는데, 뉴질랜드와 뉴질랜드 국민이 저에게 보여준
그 당시의 놀랄만한 자연, 그걸 가꾸고 지키는 끊임없는 노력 등이 연쇄적으로
저의 두뇌를 강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정말 선진국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 하는 감탄만 늘어 놀 수밖에 없었지요
가는 곳곳, 시시각각으로 눈앞에 전개되는 수려한 대 자연,
얄미우리 만치 깨끗하고 잘 정돈된 주택들, 거리의 간판들, 내 혼을 쏙 빼먹는 것
같은 그림 같은 초원들, 양 떼들..
저는 그 때 생각했었지요.
앞으로 이 나라는 모든 생산 활동을 중단하고
이 자연과 이 국민성, 이 청결 만을 가지고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곳에 순수 관광을 목적으로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또 다시 오게 된다면 나의 이 믿음은 맞을 것이다
그런 다음 며칠 후 귀국해서 저는 저녁 밥상에서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자세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습니다.
영희야 ! 뉴질랜드는 정말 멋있는 곳이야 !
나 혼자 그곳에 갔다와서 정말 미안해 !
내가 틀림없이 다음에 당신을 데리고 같이 갈께 !
정말이야 꼭 데리고 갈게 ! 꼭 ! 꼭 !
이게 정확히 24 년 전,
제가 아내에게 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는 아내와 함께 요번 토요일에
뉴질랜드를 향해 다시 날아갑니다
지금이야 우리 나라도 많이 좋아져서 길거리도 깨끗해졌고,
자연 환경 보존에 대한 의식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좋아진 것인지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길거리에서 구멍난
청바지를 입은 많은 젊은이를 쉬이 볼 수 있고,
장도리 , 뺀찌를 자기 자가용차에 싣고 출장 수리 나가는 수리공을
흔히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는데,
그러면 그 당시 현재의 우리 나라였던 뉴질랜드는 그 동안
또 어떻게 변해서 저에게 어떤 충격을 줄 건지 자못 궁금합니다만,
아무튼 저는 24 년 전 제가 했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참 기분이 좋습니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한 자랑스런 뜀 꾼으로서
가는 곳곳 그림 같은 초원이라든지, 거울 호수나 에이번 강가나,
동화 같이 아름다운, 반지의 제왕 영화 촬영장소 등에서 매일 매일 뛰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많이 흥분시킵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빨아서 정성스레이 꼬들꼬들하게 잘 말려놓은 저의 나이키 곤색 운동화를
혹시라도 빠뜨릴까봐 현관 앞 신발장 유리 전면, 현관 열쇠 옆에 올려놓았습니다
네, 틀림없이 가져가야지요.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24 년 전,
저는 신발을 팔려고 뉴질랜드의 북 섬, 오클랜드 공항에 내려 웰링턴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4 년 전이면 1980 년으로 우리 나라는 이제 막 경제 성장의 바퀴에
가속을 붙이려 온 나라가 일하자 ! 일을 하자 ! 수출하자 ! 수출만이
살길이다 ! 라고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할 때이었습니다
일을 하는데 일요일도 없었고, 잘 나가는 회사라야 한 달에 두 번,
첫째, 셋째 일요일을 쉬는 뭐 그런 식이었지요.
주말이라는 개념도 없이 일을 하던 그 때, 쉬는 날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주말 활동도 없었던 , 지금 같으면 상상도 안되던 그런 시대이었습니다
공항 대합실 제 옆에서 허름한 청바지를 입고, 누가 보아도 허드레 일을 하는
그런 복장의 한 젊은이를 저는 아까부터 깊은 호기심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지금 이 젊은이는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주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
이었습니다. 즉 그는 나랑 같이 웰링턴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그는 저의 기준에 보면 도저히 비행기를 타는 그런 복장이 아니었습니다
단독주택 하수구 막힌 곳 뚫어주는 수리공 같은 복장인데
그가 어깨에 짊어진 다 닳아 떨어진 나이론 가방도 그렇고
가방 속에 든 내용물도 울퉁불퉁, 장도리, 렌찌, 망치, 대패 뭐 이런 것들인 양,
가방의 형태 겉모습을 보면 깨끗한 서류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나는 궁금증이 있어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곳 오클랜드에 사시는 것 같은데 웰링턴에는 어떤 일로 가시느냐고..
그러자 그 젊은이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자기의 고객 부엌 씽크대가 고장나서 그것 고쳐주려고 내려간다고...
자기는 씽크대나 부엌 하수구 같은 곳 수리 전문가라고...
이 말을 들은 저는 혼란에 빠졌지요
첫째, 이렇게 허름하니 닳아 구멍난 청바지를 입고도 당당하게 비행기를 타는
이 나라는 도대체 어느 나라인가 ? 그 당시 저의 기준에는 이웃에
나들이를 간다거나, 특히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넥타이에 양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이 잘 안되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둘째, 아니, 하수구 막힌 곳을 뚫는데 사람을 쓰고, 그것도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기술자를 불러서 고친다면 이 사람 일당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그 당시 우리네들 서민은 집안에 뭐가 고장 나면 주변에 있는 것 가지고
적당히 막고 떼우고 하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물도 수도꼭지에서 나와 금방 땅속으로 들어가는데 막힐 관이 어디 있으며
구멍 나면 모양 볼 것 없이 그냥 테이프로 쳐 바르면 되었지요.
지금이야 우리의 수준이 높아져서 어림없는 이야기지만...
좌우지간 그렇게 이 젊은이하고의 첫 대면에 문화적 충격을 단단히 받고서
뉴질랜드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뉴질랜드의 대 자연이
저에게 준 충격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나라에는 자연보호라는 개념이 없었고, 사회적 질서 의식도
극히 초보적 단계에 있었는데, 뉴질랜드와 뉴질랜드 국민이 저에게 보여준
그 당시의 놀랄만한 자연, 그걸 가꾸고 지키는 끊임없는 노력 등이 연쇄적으로
저의 두뇌를 강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정말 선진국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 하는 감탄만 늘어 놀 수밖에 없었지요
가는 곳곳, 시시각각으로 눈앞에 전개되는 수려한 대 자연,
얄미우리 만치 깨끗하고 잘 정돈된 주택들, 거리의 간판들, 내 혼을 쏙 빼먹는 것
같은 그림 같은 초원들, 양 떼들..
저는 그 때 생각했었지요.
앞으로 이 나라는 모든 생산 활동을 중단하고
이 자연과 이 국민성, 이 청결 만을 가지고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곳에 순수 관광을 목적으로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또 다시 오게 된다면 나의 이 믿음은 맞을 것이다
그런 다음 며칠 후 귀국해서 저는 저녁 밥상에서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자세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습니다.
영희야 ! 뉴질랜드는 정말 멋있는 곳이야 !
나 혼자 그곳에 갔다와서 정말 미안해 !
내가 틀림없이 다음에 당신을 데리고 같이 갈께 !
정말이야 꼭 데리고 갈게 ! 꼭 ! 꼭 !
이게 정확히 24 년 전,
제가 아내에게 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는 아내와 함께 요번 토요일에
뉴질랜드를 향해 다시 날아갑니다
지금이야 우리 나라도 많이 좋아져서 길거리도 깨끗해졌고,
자연 환경 보존에 대한 의식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좋아진 것인지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길거리에서 구멍난
청바지를 입은 많은 젊은이를 쉬이 볼 수 있고,
장도리 , 뺀찌를 자기 자가용차에 싣고 출장 수리 나가는 수리공을
흔히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는데,
그러면 그 당시 현재의 우리 나라였던 뉴질랜드는 그 동안
또 어떻게 변해서 저에게 어떤 충격을 줄 건지 자못 궁금합니다만,
아무튼 저는 24 년 전 제가 했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참 기분이 좋습니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한 자랑스런 뜀 꾼으로서
가는 곳곳 그림 같은 초원이라든지, 거울 호수나 에이번 강가나,
동화 같이 아름다운, 반지의 제왕 영화 촬영장소 등에서 매일 매일 뛰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많이 흥분시킵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빨아서 정성스레이 꼬들꼬들하게 잘 말려놓은 저의 나이키 곤색 운동화를
혹시라도 빠뜨릴까봐 현관 앞 신발장 유리 전면, 현관 열쇠 옆에 올려놓았습니다
네, 틀림없이 가져가야지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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