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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좋아서 계속 달릴겁니다(2편) 보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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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해성 작성일00-09-25 01:17 조회1,5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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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좋아서 계속 달릴겁니다(2편)

(도입부분)
어제는 서울시청마라톤동우회(회장 이규일) 주최 서울시 직원친선마라톤대회가 한강에서 열렸습니다. 6회째인데 갈수록 참가자의 수가 늘더니 급기야는 423명이나 되었습니다. 서울시청마라톤동우회의 마라톤 보급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많은 결실을 얻게 된 셈이지요.

'98.11.26. 남산에서 개최되었던 제 1회 서울시직원 친선마라톤대회 참가자는 고작 60여명 정도밖에 안되었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늘어났고, 당시에는 서울시청과 종로구청 외에는 마라톤동우회가 없었으나 이제는 중구, 서대문, 양천, 광진, 성동, 서초, 영등포등 대다수의 구가 경쟁적으로 마라톤동우회를 창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만사가 그렇지만 더욱 그런 것이 "땀을 흘린만큼 그결과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마라톤입니다. 힘들다는이유로 턱밑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참지 못하고 항상 편안하게만 훈련 한다면 결코 성취감은 맛볼 수 없습니다.

어제대회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직원은 하프 평균기록이 1시간 25분대, 풀코스 3시간 14분대 입니다.
어제 1위(정동숙. 마포소방서) 기록이 1:23대이니 당연히 하프에서 입상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지난후에 여자부 1위 보다 약간 빠른 기록으로 겨우 결승점에 골인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본인은 더하겠지만 저도 당황스러워 고개숙인 그에게 무어라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긴말은 하지 않고 오늘은 "공식대회가 아닌 친선대회이니 좋은 경험했다 생각하라"며 막걸리 한잔을 권했습니다.

(본문): 횡성에서 태기산 입구까지 구간에 대한 소개를 올리겠습니다.

어찌보면 경기도 양평군과 강원도 횡성군의 경계인 그 이름 모를 산에서의 쓰라렸던 경험은 저의 앞으로의 마라톤 인생에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며 보다 겸허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사건을 제공한 것으로 생각되어 쓰라린 추억이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앞선가던 서경석님이 부상에 지쳐 고전하고 있는 저의 심정을 고려하여 지체되는 시간을 아깝다 하지 아니하고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기다려 주었습니다. 서경석님의 전화를 받고 기분이 상승하고 없던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내쳐 달리려 했으나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발톱이 들려진 왼쪽 엄지발가락을 조심스럽게 추스르며 약 10분을 달리니 약간 내리막길에서 서경석,이귀자님이 반가운 모습으로 반겨준다. 불과 수시간만의 만남이지만 혼자 달린다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장거리 레이스를 경험해 보지 않은 분은 이해하기 힘들것입니다. 전문 마라토너도 대회에서 혼자 달리는 것보다는 그룹을 지어 달리는 것이 힘도 덜들고 좋은 기록을 낼 수 있기에 선호하는가 봅니다. 서울마라톤 코스에서 치뤄졌던 지난 7.16. 105.48km 연습경기에서도 우리 셋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과 힘을 모아 거의 함께 레이스를 펼쳤었습니다. 힘든줄 모르고 전구간을 달릴 수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이제는 서로가 잘 알기에 세사람이 같이 달리다 보면 누군가가 뛰쳐나가 리듬있게 끌어주고 일제히 따라가면 다시 늦추고 하는 페이스 배분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습관처럼 하곤 한답니다.

제가 횡성 초입에서 거의 탈진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아는 서경석님이 저를 그냥 놔두고 그냥 갔을리는 만무하겠지만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온후한 마라톤 정신에 감사드립니다.

지치고 허기진 몸, 세수도 하지 못해 시커먼 얼굴을 하고 음식점문을 들어서니 50대 주인 부부가 우리를 반겨준다. 꽤 정갈스러운 식당으로 첫 번 봐서도 인심이 후하게 생긴 분들이었다.

된장찌개와 갖은 종류의 반찬이 구미를 당기게 할만 했지만 이미 탈진직전에 이르른 나에게는 아직도 입맛이 살아나지 않는 모양이다. 억지로 먹으라고 자꾸 권유하길래 앞으로 남은 긴 여정을 위하여 밥 한공기를 다 비웠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 음식점에서 생수를 보급받은 후 횡성읍내를 향하여 출발해야 했다. 걱정반 기대반의 얼굴로 개울을 가로지는 쪽다리 앞까지 나와 배웅하는 음식점 주인 내외를 뒤로하고 아픈 다리를 슬슬 문지르며 가볍게 다리를 내딛었다(발의 시동이 걸리는데 5분이 소요됨)

서경석님과 이귀자님은 이번에는 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한다. 아마 나 때문에 너무 지체했다는 느낌이 들었나 보다. 나도 그렇지만 두분도 어느정도 지쳐있었는데 그토록 스피드를 낼줄을 몰랐다. 알 수 없는게 인체구조의 오묘함과 힘의 원천이라지만 그들의 지칠줄 모르는 체력에는 공포감까지 생길정도다. 특히 이귀자님은 더하다. 지친 것 같았는데 마지막 스퍼트 할려고 뛰쳐나가면 웬걸 끝까지 따라붙는다.

횡성읍내로 가는 길은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산모퉁이 수개를 돌고 돌아도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시골길, 길 옆 개울가에 물흘는 소리가 간간히 귓전을 스칠뿐 아무 생각없이 그들을 계속 쫓아 마냥 달려야 했다. 그러나 강원도 길의 특성상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은 별로 없다. 300m 정도가면 다시 휘어지고 펴지고 하니 어느 정도 간격이 벌어졋는지 그들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20분쯤 가니 고가도로와 새로난 길이 보인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도무지 이정표 하나 변변이 없고 초행자에게는 길찾기가 어려운 문제였다. 오른쪽기로 가길로 하였다. 이제 길다운 쭉 뻗은 길을 만났다. 어느 정도 앞에서 달리는 지 보일법도 한데 약 1km전방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다시 돌아갈 일을 생각하니 억울하기만 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계속 달리기를 20여분 쯤 하니 왼쪽으로 꺽어지는 길로 횡성 방향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제 횡성읍내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하며 쉬지 않고 꽤 오랜 시간(시간은 기억나지 않음)을 더달려 가니 큰 하천이 있고 그위로 난 다리를 지나니 4차선 도로가 나온다. 횡성읍내였다. 강원도에 들어와 처음으로 맞는 시가지 였다. 어쨋든 경기도는 넘어 우리의 목적지인 경포대 해수욕장이 있는 강원도의 첫 번째 읍내에 왔으니 어느 정도 힘은 솟았다.

횡성읍내의 초입부터 약간 경사길이 나온다.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을 힘있게 달려보았다. 지나던 사람들이 추석날 전날에 배낭을 메고 달리는 새까만 얼굴에 면도도 하지않아 덥수록하게 생긴 나의 달리는 모습이 이상한지 힐끗 힐끗 쳐다본다.
추석 전날 밤으로 향하는 시간대(오후 6시정도로 기억됨) 어느집에서 고소한 깨소금 냄새가 흘러나왔다. 아마도 송편에 볶은 깨를 넣는 모양이다. 송편이 가장 먹고 싶은 순간이었다.

시가지가 끝나기 전에 약간의 음료수와 음식물을 사두는 것이 좋을 듯하여 수퍼에서 식혜를 사서 먹고 빵 3개, 초콜릿 4개(국산), 포카리스웨트(캔)2개를 샀다. 물론 나혼자 먹으려는 것은 아니고 앞서가는 서경석, 이귀자님과 함께 먹으려고 산 것이다.

황급하게 배낭을 메고 시가지를 빠져 나오려는 순간 횡성경찰서가 보인다. 경찰서 정문을 지키고 있는 의무경찰에게 앞선 주자들의 사정을 물으니 "약 5분전에 남자 하나와 여자한분이 지나갔다" 한다. 5분이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이므로 부지런히 뛰어가기로 하였다. 날은 이미 땅거미가 내리는 초저녁이다. 약 10분간을 더 달려가니 앞에 반딧불이가 빛나고 있다. 반딧불이의 효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길잡이도 되고 차량등의 위험을 피할 수 있고 말이다. 조금 앞에 서경석, 이귀자님이 보인다.

그들에게 가까이 갈수록 일부러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 살금 달려갔다. 마라톤화가 좋긴 좋다. 달릴 때 소리가 나지 않으니 솜으로된 신발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열심히 달리느라 몰랐던 모양이다. 그들 뒤 2m에 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장난기가 동하여아무런 말없이 슬쩍 그들의 앞으로 속력을 내어 뛰어 앞서봤다. 서경석님이 깜짝 놀라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느냐는 눈치이다. 앞으로 둔내까지 약 20km는 남았는데 둔내에서 저녁을 먹기는 너무 늦을 것 같고 하여 우리는 상의를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판단이 상당히 좋아 다행이었다. 후술하겠지만 둔내에서는 식사를 할만한 곳이 없었다.

그곳으로부터 약 20분을 달려가니 길가에 식당이 보인다. 약 200여호 정도의 민가가 옹기종기있는 꽤 큰 시골마을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시끌 시끌 사람사는 곳 같다. 방하나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주로 젊은 청년들이 었는데 아마도 외지에 나갔다가 추석이라 돌아와 오랬만에 만나는 동창 또는 후배들이 술자리를 마련하여 정담을 나누는 모양이다.

중학교때 국어책에서 배웠던 "노변의 담화"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나의 외할머니께서는 이 외손자를 무척이나 귀여워 주셨다. 부안 내소사 부근의 원암리라는 마을은 약 300m 정도 되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이다.

여름내내 열심히 일하고 겨울에는 많은 눈이 내리기에 일은 손에서 놓고 대신 동네 할머니 또는 한참 처지지만 약 50쯤되는 아낙들이 외할머니댁에 매일 같이 놀러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화로가에 앉아 온갖 세상이야기를 한다. 외할머니 무릎위에 누워 잠자는 시늉을 하며 나는 그분들의 정감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구수한 시골 내음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결혼후 1년도 안되어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큰변을 당하시고 65년을 홀로 사시다가 5년전에 안식의 삶을 찾아가신 외할머니 ! 왜 이대목에서 외할머니 생각이 간절히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엿튼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그들에게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지 16년여가 되었건만 이제 부모님까지 서울로 모셔와 살고 있다 보니 그곳에 내려갈일이 별로 없고 기회가 없다 보니 거의 잊고 삽니다. 군대갈 때 인사하러 가니 허리춤에서 만원짜리를 꺼내어 주며 눈물을 보이시던 봉동댁 아주머니(어머님 친구분) 등 많은 정다웠던 분들이 떠올려 집니다.

약5분동안 옆좌석에서 자유롭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주인댁 딸인듯한 아가씨(?)가 생수를 들고 와서는 옆 테이블 손님들과의 중간에 커튼으로 칸막이를 해버렸다. 아마도 우리들의 행색이 힘든 모습을 하고 있으니 편히 쉬라는 의미이리라. 아뭇튼 약간 아쉽기는 하다. 저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구수한 된장국에 반찬도 꽤 맛갈스러웠다. 이귀자님이 맛이 있다며 반찬을 더 달라하니 준비된게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해오겠다 한다. 마음씨 착하고 가정교육을 잘받은 것으로 보이는중 요즘보기 드믄 15세 정도의 소녀(?)였다.

이제 지체할 시간이 없다.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출발할 시간이다. 식사후 10분도 안되어 서경석님이 빨리 가자고 조른다. 조금만 쉬었다 가고 싶다. 하지만 분위기에 찬물을 끼언긴 싫어 마지 못해 뒤따라 나왔다. 배낭에 생수를 새로 보충하고 인심좋은 주인 내외의 격려를 받으며 음식점문을 나오는 순간 밖은 꽤 쌀쌀해졌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역시 심하다.

이용식님의 말처럼 겨울에는 횡단하기가 쉽지 않고 여름과 초가을 사이가 가장 적합한 모양이다.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올해안에 다시 한번 한반도 횡단에 도전하여 당초 목표했던 기록을 성취해보고 싶은게 현재의 솔직한 심정이다.

오늘 식탁에서 식사중 아내에게 넌지시 꺼냈더니 정색을 한다. 올해는 아니 내년에도 안된다 한다. 정하고 싶으면 한 3년후 정도에 하라한다. 지금까지 낫지 않는 발가락의 부상이 있는데 또 어떤 부상을 당해올줄 누가 알겠느냐 한다.

약5분을 가니 약간 경사길(7%)이 나온다. 오히려 편안한 길이다. 달리다 보니 중 2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4 ~5명이 일제히 박수를 하며 우리를 따라온다. "힘내세요!"한다. 일간스포츠에 게재된 우리들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 하여튼 기분은 좋았다. 강화도에서 그긴길을 달려왔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진심어린 축하의 박수를 받아본 것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배어있는 조그만 동네, 아름다운 사람들만이 사는 순박한 동네였다. 달리면서 나는 일행 두사람에게 한참동안 그 여학생들 이야기만 하며 입의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유쾌한 기분이었다.

뉴욕대회등 외국대회 참가 경험이 많은 고형식님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뉴욕마라톤에 참가하면 그야말로 달리는 기분이 난다 한다. 꼴지로 가는 사람에게도 시민들이 하나같이 연도에 나와 아낌없는 박수를 준다한다. 달리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축하해 줄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이 넘치는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고대해 본다.
그러나 이는 우리들의 바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달리는 사람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부상덕에 요즘 달리지 못하고 대신 대회에 나가 회원들의 달리는 모습을 사진을 촬영해 주고 지친직원들과 함께 달려주며 힘을 북돋아 주는 일을 할 기회가 있다보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고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욕심꾸러기 같이 국내 대회는 건의 빠지지 않고 달리다 보니 내 자신의 기록향상에만 급급했지 남은 돌아볼 줄 모르는 냉정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금번 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도 어찌보면 내자신이 성취감을 맛보고 은근히 과시하고픈 욕망에서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마라토너들을 자신만 달리지 말고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아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서울마라톤클럽 9월 월례대회가 오늘 아니 이제는 어제가 되었네요(지금시각 0시 50분) 한강에서 있었습니다.

금번 한반도 횡단팀원으로 완주한 채흔호님이 성치 못한 몸을 이끌고 자신은 못달리지만 남을 위하여 5시간 넘게 자원봉사를 했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분은 51세의 나이인데 금번 횡단을 하며 다리부분과 허리부분에 부상을 입었으며 몸을 가누기가 힘들텐데 말입니다.

다시 달리기를 계속하여 약 30분여를 더가니 핸드폰 벨이 울린다. 윤장웅님의 전화였다. 분명 횡성입구 산을 내려올때는 우리보다 한참 처져 있었는데 이미 우리앞에서 가고 있다 한다. 진부(?) 50km 전방 이정표 있는데를 지난다 했다.

밤길이고 이정표도 없고 하여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로부터 얼마가지 않아 윤장님이 말한 그 이정표가 나왔다. 아니 그렇다면 우리와는 별로 차이가 없지 않은가 ? 다시 한번 윤장웅님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괜시리 조급한 마음이 일까봐 참기로 하였다. 그냥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산길의 초입인 모양이다. 불빛이 비춰지던 민가도 없고 서서히 도로의 경사가 심해지고 있다. 어느 만큼 올라가니 밝은 빛이 비춰진다. 외딴집이다. 보안등이 꺼졌다 켜졌다 한다.
전기절약을 위하여 마냥 켜놓지 않고 아이디어를 발휘한 모양이다. 양방향 모두 별로 차량들의 통행이 거의 없다. 차량도 인적도 없는 그길을 그나마 우리는 셋이 의지하여 달리는데
윤장웅님이나 채흔호님(우리보다 한참 뒤에 오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음)은 얼마나 외로울까 하고 생각도 하여보았다. 금번 경험에서 뼈져리게 느꼈지만 이번에 48시간내에 완주를 못한 것은 팀웍의 부재가 가장 큰 요인이다. 어우러져서 냉정하게 페이스 조절하며 달렸더라면 2~3명은 시간내에 완주했을 것이다.

이제 완전히 산이 시작되었다. 남산의 조깅코스를 달려준 경험이 큰 힘이 되었다. 가도 가도 정상이 나타나지 않는 너무 지루한 산이다. 보름 전야의 밝은 빛을 받으며 이름 모를 산을 넘는 기분, 다음에 이런 기회가 다시 온다는 보장은 없잖은가 말이다. 밤에 달리는 언덕길은 같은 높이의 언덕인데도 낮보다는 훨씬 수월한 모양이다. 돌아가면 정상이려니 하는데 다시 언덕이 나온다. 남산길은 기본이고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관악산, 제천금수산 등에서 개최된 산악마라톤대회를 달려 입상하기도 한 서경님도 혀를 내두른다. 대관령은 이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하며 말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 참으로 오랜만에 차량이 오는 소리와 헤트라이트 불빛이 비춰옴을 느꼈다. 반갑다. 그런데 약 2분여가 지나서야 차량이 올라온다. 차량도 넘기 힘든 길을 우리가 달린다는 생각을 하니 더 힘이 난다. 이제는 정상이 나오겠지 하는데 정상은커녕 아직도 게속될 모양이다. 차량이 멈춰섰다. 이용식님 이었다. 얼마만인가 ! 깁스를 하고 차에서 내려오는 그의 모습이 너무 애처롭게 보인다. 우리들의 달리는 모습을 촬영해준다. 그리고 포카리스웨트(대형 2병)를 받았다. 무거운 줄 모르고 내 배낭에 다 받아 넣었다. 이제는 배낭의 무게는 잊은지 오래다. 처음 달리기 시작할 때나 어떻게 무게를 줄여볼까 하고 궁리했는데 달리다 보니 큰 영향은 없는 것 같다.

이용식님과 헤어져 20여분을 더 올라가니 정상이 나온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약 1시간 30분 걸린 것 같았다. 내려가는 길은 의외로 짧다. 올라오는 길의 1/5정도 밖에 안된다.
저멀리로 밝은 불빛들의 군락이 보인다. 그리고 헤트라이트를 비취며 차량들이 많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둔내로 보여진다. 그런데 역시 가도 가도 평지는 나오지 않고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이윽고 평지로 접어들어 좌측으로 접어드니 저만치 둔내휴게소가 보였다. 너무 반갑다. 우선은 영양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서경석님이 약간 스피드를 내어 달음질 쳤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문을 닫은 것이다. 야속하다. 아무리 추석전날이지만 휴게소가 24시간 문을 열어놓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이귀자님이 춥다며 따끈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 한다. 동전 400원이 있다. 난 안마시고 두분에게 마시도록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휴게소가 일찍 문을 닫은 것이 아니고 영업이 잘되지 않아 폐업직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잠시 몸을 쉬고 둔내로 향하여 달리기를 재촉하니 이용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둔내읍까지는 약 3km인데 아파트 옆에 있는데 오라 한다. 박문승, 윤장웅님이 기다린다 한다.
힘을 내어 달리기를 약 30분 하니 한 대의 차량이 우리들 앞에 선다. 이용식님의 차였다.
윤장웅, 박문승님을 부근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들의 달리기에 문제가 생겼다 한다. 박영도님은 이미 2시간 전에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고 박문승님은 태기산 방향으로 달리다가 포기하고 돌아왔다 한다. 얼마나 더 뛰었는지 모르지만 약오르는 일이 아닌가 !.나중에 알아보니 12 ~ 13km는 더뛰었다 한다.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태기산인데 밤에는 짐승들이 출몰하는 경우도 있고 낮에도 인적이 뜸해 이곳 사람들 조차도 넘기를 주저하는 위험한 산이므로 지금은 넘지말고 날이 밝으면 넘자 한다. 이용식님도 산을 넘는데는 5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며 바람이 세차니 이밤에 넘다 보면 무슨 사고를 당할지 위험하니 날이 밝으면 넘는데 좋다 한다.

그러나 나와 서경석님은 그들의 생각이 맞이 않음을 주장하였다. 시간을 허비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위험하다 하여 몇몇 시간을 지체하며 머무른다는 것은 차라리 도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서 였다. 약 10분간 실갱이를 하다가 결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식사가 문제였다. 이곳에서 태기산 입구까지만 해도 약 3시간이 걸린다 하는데 산에가면 식당도 없고 넘는데 5시간이 소요된다 하니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치 않으면 산중간에서 기진 맥진할게 뻔한 이치였다. 우리는 부근의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다. 새벽 1시 30분쯤 음식점이 문을 열었을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였다. 노력도 허사였다. 없다. 실망감이 엄습해 온다. 동시에 허기가 몰려온다.

누군가가 통닭집을 가리키며 치킨이라도 먹자고 한다. 배고픈데 탄수화물, 지방질 찾게 생겼는가 ! 나의 지론에는 맞지 않지만 일단은 배를 채워야 했다. 5명이 2마리의 통닭을 다 먹어치우진 못해 남는 것은 내 배낭에 넣었다. 총 9조각 이었다. 약 1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태기산으로 향했다. 달도 진 모양이다. 깜깜한 밤이다. 반딧불이가 우리들의 길을 인도해준다.
박문승, 윤장웅님이 앞섰고 나는 최고 후미에서 달린다. 약 2시간을 달렸을 까 작은 산 입구에 도착했다. 태기산은 아니고 그 줄기인 모양이다. 박문승님이 갑자기 앞으로 뛰쳐 나간다.

먼저 간다. 재미있게 사시는 분이시다. 부인께서 강릉 경포대에 이미 오셔서 기다리신다 하니 오늘 저녁 7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며 먼저 가니 양해하라 한다. 그의 달리는 모습을 보니 따라 붙고 싶은 생각이 났다. 양평 20KM 전방에서 그와 경쟁을 하며 약 12KM를 나홀로 독주를 하다가 탈진 지경에 이르렀던 생각이 나서 얼른 그만 두었다.

잠시후 아니 30초후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얼마나 빨리 산을 올라 채는지 !
금번 한반도 횡단을 위하여 8월부터 매일 하루에 20KM 이상씩 배낭을 메고 산을 달렸다 하니 그의 실력은 가히 짐작할만 하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점은 금번 달리기 출발 2일전까지 운동량을 그대로 하여 강훈련을 했다는 점에서 역효가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용식님의 부상도 어찌보면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횡단 출발 1주일전 일요일에 비를 맞으며 45KM 산을 6시간에 달렸다 하니 얼마나 많은 부하를 주는 훈련을 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나중에 나의 지적내용을 이용식님이 인정했음.

물론 저도 이번에 큰 실수를 몇번 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실수는 마라톤 전문화 그것도 산지 5일 밖에 안되는 신발을 신고 뛰었다는 것입니다. 알만한 사람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벌여 발가락, 발톱에 부상을 입었으니 어리석게 결정한 덕을 톡톡히 본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맺겠습니다. 그러나 달리기가 좋아 계속 달립겁니다(3편)는 더욱더 성의있는 모습으로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재미없고 지루하며 재주없는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종로구청 마라톤동우회 정해성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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