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좋아서 계속 달릴겁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해성 작성일00-09-21 02:53 조회1,697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왜 달리느나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전 그냥 살며시 웃거나 마지 모해 이야기할라치면 "그냥 좋아서 달린다"고 말하며 머뭇거립니다.
한반도 횡단 서해에서 동해까지 팀원으로서 아름다운 산하를 돌아보며 그힘들땐 쉬엄 쉬엄 여유있는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전국의 네티즌 마라토너 여러분 ! 우리는 성도, 사는 모습도, 지향하는 바도 각자 다르지만 "마라톤"이라는 고리에 끈근하게 연결되어져 대회 때마다 보이지 않으면 아쉬워 하며 혹시 ? 다음대회에는 하고 은근히 기다려지는 그런 숙명적인 관계라고 생각됩니다. 어찌보면 친구 만큼이나 가까운 동지사이입니다.
달리기가 좋아서 대회마다 가리지 않고 즐겨나가다 보니 이제는 종교활동도 부모님 찾아 뵙는 일도 줄어들었고, 급기야 금번 추석연휴도 저의 아내와 어린 남매(민지,원식)가 부모님께 저대신 혼을 나는 신세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남편하나 잡지 못해 밖으로 나돌게 하느냐 ?, 왜 말리지 않았느냐 !. 등 등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답니다.
금번 한반도 횡단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성공을 기원해주시고 지켜봐 주신 네티즌 마라토너 선배님들께 늦게 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인사말을 올리는데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줄 몰랐습니다. 서로를 다독거려 주고 순전한 호감을 갖고 상대에게 아량을 베풀수 있는 여유가 절실히 필요할 때 입니다.
아픈 다리를 감싸고 애닲게 한걸음 한걸음 속보로 달리며 완주하였던 윤장웅님, 태기산 내리막길에서는 발목의 통증때문에 서로 의지하고 내려갔던 처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라톤 동호인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하여 열심히 기억을 되살리며 대장정의 완주기를 작성해 주신 님의 열과성에 놀라운 마음은 물론 시샘까지 생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근 3일간의 힘든 역정속에서 이같은 일을 세세하게 기록하여 동호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 윤장웅님 !
저는 금번 한반도 횡단팀원으로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동시대를 사는 마라톤 동지로서 심심한 존경의 의사를 표하고자 합니다.
윤장웅님께서 장편의 보고서를 올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되기에 저는 간단하게 제 나름대로 느낀 점을 소개함으로써 보고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졸작이오니 이해 바라오며 편의상 경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가끔 "나"라는 용어를 사용할 터이오니 넓으신 이해바랍니다.
1.횡단팀에 합류하게된 동기
학창시절 부터 잘하는 운동하나 없고 대학입시 체력장에서는 12점밖에 못받은 운동에 열등생이었던 저는 운동신경은 뒤져도 남들에 비하여 의지력하나는 안뒤진다는 생각을 막연이 나마 갖고 있었는데
5년전 우연히 마라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재미를 붙여 이제는 스피드 러너쪽 보다는 초장거리를 선호하는 달리기를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고 금년 63.3km와 105.48km를 무사히 달리고 나니 달리는게 좋아 막연히 나마 더 먼거리도 달렸으면 했는데
이용식님이 기회를 제공하여 수일간 고민하다가 참가키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부상의 쓰라림과 달리지 못하는 고통을 삭이며 금번 횡단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동행하여 주신 이용식님에게 늦으나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 한반도 횡단을 위한 준비내용 보고
이제와 생각해 보니 75시간 30분이나 걸렸던 것은 준비부족이 크나큰 요인이었습니다. 준비에는 마음가짐과 달릴 수 있는 체력, 각종 장비등이 겠지만 ......,
저는 금번 저의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안이한 정신자세"와 "겸손치 못한 준비"였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물론 남들과 같이 세레또레 배낭, 우의, 손전등, 경광등 같은 기본 장비는 다 구입하였으며 배낭에 물통을 넣고 직접 산을 달리기도 하며 어느 정도 준비는 했다고 자신했으나 치밀한 작전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횡단팀원의 일원이었던 송인호님의 경우는 위치별 통과시간표와 지도까지 상세하게 준비하였고 윤장웅님의 경우도 치밀한 준비를 하였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저는 105.48km 달린 기록을 근거로 적어도 아무리 배낭을 메어도 43시간내에는 달릴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여 지도하나도 준비치 않았으며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있게 신축적으로 달릴 것이라고 제자신을 과대평가하였습니다만,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저에 대한 무지의 소치였었습니다.
지금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저자신에 대하여 겸손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가지, 남들은 구급약을 준비했는데 의약품이라고는 저는 반창코와 맨
맨소래담, 바세린 뿐이었습니다. 첫째날 발가락 통증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었음은 당연한 결과였었습니다.
3. 드디어 한반도 횡단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첫째날 새벽 5시 강화 창후진의 약간 쌀쌀한 날씨와 어둠을 뚫고 의기양양하게 횡단의 첫발이 내딛어 졌습니다.
지나는 사람도 차량의 통행도 거의 없는 길을 인근 마을에서 개들의 울음소리만이 적막을 깨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속 7km 속도 준수가 되지 않고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떨어져 가기에 저는 중간쯤에서 달리며 속도를 준수하도록 팀원들을 독려하였으나 처음이라서 힘이 남아서 인지 막무가내 였습니다.
팀웍의 중요성이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서로가 오랜 기간동안 사귀어 이해를 잘하는 팀원도 있지만 만난지 몇번 안되는 팀원도 있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금번 한반도 횡단팀의 출발전에 가급적이면 몇번정도 멤버쉽모임을 가졌으면 했었는데 그리 못한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동이 터올때 어느덧 강화읍에 도착했습니다. 강화대교를 지나며 48번 국도를 접어드니 선두(박문승, 박영도, 이용식님 등)와의 거리간격이 더욱더 나 가시권에서 완전히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도 저는 서경석, 이귀자, 김용주, 김호곤님등 후미 그룹 팀원들과 함께 같이 하며 조급하지 않게 달렸습니다. 오전 9시경 부터 태양이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망사 흰색 모자가 요긴하게 쓰여질 차례였습니다. 옆에 모 팀원은 검정색 모자(본인 말로는 비싸게 구입했다 함)를 준비해와 쓰다가 저에게 핀잔을 들었습니다.
'98년도 경주 동아마라톤대회때 경험인데 25도를 웃도는 더위에서 철없이 검정모자를 착용하고 달리다가 머리에 열이나서 고전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난 일이지만 그 팀원은 무사히 완주하였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48번 국도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적절한 언덕과 평지가 잘 조화 되어 달리기에는 안성 마춤이었습니다. 김포평야의 들판을 가로지며 무념 무상으로 그저 달리기만 하였습니다.
반대편으로 달려오는 차량들을 주시하며 달리느라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의 벼들을 바라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한번도 가져 보지 못하였던 점입니다.
어느덧 통진면에 이르럿을 때 선두와의 간격이 너무 벌어졌음을 느껴 후미그룹의 상황도 알릴겸 먼저 달려가기로 서경석님에게 알리고 속도를 내어 달렸다.
한 20분쯤 달렸을 까 어느 고개에서 채흔호 님이 보였으며 벌써부터 기운이 없어 보이며 다리가 부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채흔호님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지체하지 않고 언덕을 넘어 5분여를 가니 윤장웅님이 거의 걷듯이 가다가 나를 보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야속했지만 열심히 달리고 달리다 보니 5분만에 같이 달릴 수 있었으며 채흔호님과 동일한 언질을 준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를 20여분 지속하니 서울입구인 고가도로밑에 도착하였습니다.
먼저 도착한 팀원들이 약 10분전에 도착했다 하며 후미팀원들을 위하여 기다렸다 한다. 도착후 땀을 씻으려 하는 찰나에 어느새 이귀자님이 저만치서 달려온다. 철녀, 울트라우먼이라고 말해도 손색없는 분이다.,
고가도로밑에서 기다리는데 약간 기분이 우울한 이야기를 들었다. 팀원중 누군가가 후미그룹이 너무 늦게와서 피해를 준다며 약간 불평하는 말을 하여 난 그 즉시 분위기를 고려하여 서로 감싸주며 위해줄것을 권유하였다.
이번에도 역시 팀웍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약 15분 정도 기다리니 진짜 후미의 팀원들이 들어왔다. 서경석님은 2시간 50분대의 풀코스 기록을 가진 실력자임에도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하여 후미주자 3분을 계속 끌어 안고 뛰셨다. 적어도 강화도에서 개화동 입구까지는 마일다.
나는 그렇게는 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각종 마라톤대회에서 페이스 매이커를 자청하는 사람들과 달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남을 위하여 자원봉사해주는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로 보여진다.
개화동입구에서 개화동중심가 까지의 길은 찻길이 위험하여 보도를 통하여 거의 걷다시피하며 약 10분이 소요되었고 우리는 이용식님이 안내하는 음식점에 도착하여 설렁탕으로 점심을 해결하였으며 지체된 시간을 고려하여 거의 쉬지않고 한강 진입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식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곧바로 달리지 않고 걷기로 하고 아파트 옆길, 공사장 주변, 비포장도로 등 약 15분을 속보로 전진하니 드디어 한강 진입을 알리는 굴다리가 나온다.
반가웠었다. 익숙한 한강길이 아닌가 !
한강,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 하도 많이 달렸기 때문이리라. 춘천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에 5번째 출전하는 나는 첫번 출전때부터 계속 코스를 답사하였다.
이제는 코스도 어느정도 익숙할텐데 돈 들고 왜 답사하느냐는 아내의 애교석인 핀잔에도 난 올해에도 답사를 할 것입니다. 그만큼 눈에 익숙하면 달리기 쉽기때문입니다.
한강에 접어드니 먼저 눈에 띄는 건 흙먼지길이었습니다. 희뿌연 흙먼지 사이로 역시 또 한무리의 선행 팀원들이 500여 미터 전방에서 마악 한강에 접어든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달릴테면 달려보라지 , 저는 혼자 말을 하며 묵묵히 달렸습니다. 그때까지는 페이스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김포부근에서 생긴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물집외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습니다.
양화대교 부근에 도착했을 무렵 그만 물집이 생겼던 엄지발가락 부분이 퉁퉁 부어오르며 오른쪽 신발앞부분을 꽉 조이게 하여 달리는데 너무 부자연 스런 동작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오른 쪽 아픈 발보다는 왼쪽 발에 약간의 힘을 싫어 달리다 보니 여의도 부근에 오니 이미 왼쪽발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며 역시 부어올랐습니다.
증상은 오른쪽 발과 똑같았으며 신발을 벗고 싶을 정도로 꽉조여 달리기에 너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영등포 육상연합회 회장님 이하 회원님들의 격려가 있었기에 정신적으로 해해이해지기 쉬운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기에 이자리를 빌어 영등포육상연합회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의도에 도착하니 위 단체의 회장님등 몇몇 회원님들이 윤장웅님 응원명목이었지만 우리 모두를 환영하며 포도, 바나나 등을 제공하며 힘을 북돋아주었습니다.
저는 그사이에 아픈 발가락사이에 바셀린을 바르고 반창고를 칭칭 감았습니다. 어리석게도 구급약을 가져가지 않아 발에 동통이 생기는줄을 모르고 화를 자초했습니다. 양쪽 엄지발가락은 아직도 얼얼하며 동상걸린것처럼 진물이 나오며 나무조각처럼 단단하고 감각이 없습니다. 당분간 달리지 못하여 속상합니다.
서울마라톤 엄우용님의 답답했던 심정을 알것 같습니다.
반창고를 감은 덕분인지 통증을 모르고 달리는데 반포대교쯤 가니 오른쪽 엄지발가락에서 찌릿하는 통증이 있었습니다. 주사를 맞을 때 보다 약간 아픈 수준이었으며 물집이 터지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으며 이제는 통증이 사라지겠구나라는 안심을 하며 그냥 달렸습니다.
그런데 부은 부위는 가라않지 않고 통증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때 서경석님이 이제 부터 달리는 거야 하며 좀더 스피드를 내어 선두팀을 따라가자 제의하였습니다. 지난 7월 16일 서경석, 이귀자, 저 3명이 105.48km를 동반주한 익숙한 길이기에 그리하마 쾌히 승락하고 스피드를 내어 달리다 보니 어느덧 성수대교 부근에 도착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버페이스였습니다. 선두그룹들이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 성수대교 밑에서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보고 먼저 가라고 하는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6명의 선두그룹을 뒤로하고 광진교 방향으로 달리기를 계속하다 보니 잠실 토끼굴 못미쳐서 어느 아주머니가 우리들 뒷편에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5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변변한 체육복 복장도 안갖춘 거의 평상복 차림인데 우리를 앞질러 간다.
서경석님은 아주머니와 같이 달리는데 나는 실력이 되지 않는다. 일부러 페이스 배분을 위하여 뒤쳐졌다. 약 50m 뒤쪽으로 . 어느덧 광진교 부분에 다다르니 아주머니는 오던길을 되돌아 간다하며 훌쩍 떠나간다. 되돌아가는 모습이 여유있고 부러워 보였다.
광진교부근에서 약 10분정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박문승님이 거의 탈진상태에서 걷다시피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박수를 하며 맞이하고 거의 쉴 쉬간을 주지않고 한강의 마지막 자전거길 끝인 구암정을 향하여 달렸다. 날은 어두워지고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서경석님과 이귀자님이 나와 박문승님을 놓아두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윤장웅님의 보고서에 약간 언급이 되어 있듯이 서경석, 이귀자, 정해성 이 세사람은 달리는데 한편으로는 견제를 하고 밀어주고 하는 동지애가 두터운것을 느낀다. 후술하겠지만 서경석님에게 금번 완주의 공을 돌리고 싶다. 그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아마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어둠속으로 갑자기 사라져 버린 두명의 경쟁자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박문승님을 챙기며 달리려 했다. 먼저 가라한다. 자신은 조금 쉬면서 페이스 조절을 하며 천천히 달리겠다 한다.
마지못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재촉하여 선두팀을 쫒아갔다. 보이지 않는다. 약 500여 미터나 떨어져 있나 보다. 구암정으로 향하는 길옆은 유난히 갈대가 많은 지역이었다. 나중에 아내와 함께 걸을 계획이다.
약 5분을 달리니 저만치에서 자전거를 탄사람이 오고 있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인사하고 앞선 주자의 위치를 물으니 약 200m 전방을 두사람이 달리고 있다 한다. 더욱더 힘이 솟았다. 불과 3분후 구암정에 도착하였다.
도착후 먼저 핸드폰으로 집에 전화를 했다. 강건너 편 산기슭에서 어느 이름모를 트럼펫주자의 구성진 음률이 들려온다. 참 여유있게 세상을 관조하며 사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구청 마라톤 동우회 부회장 김성철씨도 마라톤 외에 갖가지 취미를 갖고 있는 분이다. 역시 트럼펫 수준급으로 우리구청 보컬팀의 일원이기도 하다.
박영도님, 송인호님, 윤장웅님등 속속들이 도착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이용식님은 도착하지 않는다. 핸드폰을 걸어보니 곧 도착할 것이라 하여 안심이 되었는데 도착하는 모습은 여간 애처롭지 않다.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으며 질질 끌다시피 하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자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미사리까지 가서 저녁을 드십시다. 이용식님의 제안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조안정도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는 것이 맞는데 계획보다 약 3시간 정도 늦은 모양이었다.
약 5m 정도의 경사길을 기어 올라 오니 올림픽 대로가 나온다. 차들이 씽씽 달리니 겁이난다. 차로 달리기를 포기하고 보도위에 올라가 달렸다. 채흔호님은 보폭이 길고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나는 걷지 않고 계속 달리는데도 그분의 걷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배도 고프고 지칠대로 지친 우리에게 미사리 주변의 음식점은 탄수화물 식보다는 순 육류만을 취급하는 곳만 있었다. 일행의 대다수가 선택한 음식점을 윤장웅님은 안간다 한다.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그러나 주변에 된장찌개등을 하는 집이 없는 듯하여 아쉬운 대로 들어가 보니 왠걸 주인이 마음이 착하여 우리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전문은 아니지만 두부에 된장찌개를 해주었다. 남들은 다 든든한 식사를 하였으나 박문승님과 나는 겨우 한공기를 비우는데 그쳤다.
어는 정이 넘치는 팀원이 나와 박문승님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빛으로 식사를 더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밥이 들어 가지 않는다. 속이 답답하고 토할 것만 같았으며 발가락은 더욱더 부어 걱정만 더하였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고마운 식당을 뒤로 하고 팔당대교쪽을 향하였다.
아 ! 500m도 못가서 달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음을 깨닳았다.
왼쪽 엉치뼈(정확한 명칭을 모름.) 부근에 통증이 엄슴해 오며 달리고자 하나 통증때문에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를 정도로 달릴 수 없게 하였다. 이미 선행팀원들은 500m 앞을 지나고 있고 나는 나보다 더 부상이 심한 이용식님이 뒤에서 오면 같이 합류할 요량으로 속도를 늦추어 걷다시피 해도 이용식님을 보이지 않았다.
팔당대교를 지나 첫번째 터널을 통과후 두번째 터널에 들어가니 터널의 끝부분에 누군가가 보였다. 이제야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는 희망이 생겼다. 아픈 다리를 생각치 않고 오기로 조금씩 발돋움하며 달렸다. 점점 거리는 가까워 졌으나 통증은 예사롭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리석은 행위였다. 다리에 무리한 힘을 주었던 것이다. 그때 가져갔던 맨소래담이라도 발라줄 것을 하는 후회감도 든다.
세번째 터널에서 완전히 팀원과 합류를 하였고 마지막 6번째 터널을 지나면서 부터는 분위기상 스피드 경쟁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동안 일정보다 늦게 달렸기때문에 48시간내 도착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느낀 팀원중 일부가 갑자기 대오를 이탈하여 뛰쳐 나갔다. 박문승, 서경석, 이귀자님 이었다. 나도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통증도 모르고 갑자기 그들의 뒤를 따라 가다가 500m도 못가서 추월하여 양평 20km지점 부터 8km 지점까지는 혼자 달릴 정도로 스피드를 높여 달렸다.
양평 8km 남은 이정표 표지부근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금번 한반도 횡단팀원중 젊은 측에 드는 박영도님 이었다. 깜짝 놀랐다. 서경석님, 박문승님, 이귀자님이 내뒤에 곧바로 도착할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의외의 일이었다. 약 20분을 그와 스피드를 같이 하며 달리다가 지쳐 탈진 직전에 갔다. 역시 나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탈진의 초기증상인 구토가 있었고 오한이 오는 관계료 박영도님이 잠시 나를 보살펴 주었다.
한참을 지난후 서경석님등 일행이 도착하여 우리는 근처의 휴게소에 들러 따끈한 식사를 하였다. 입맛은 역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사리 저녁식사때 처럼 걱정 스런 말을 또한다. 그러나 밥이 들어가지 않는다. 남들은 두그릇씩 먹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 그지없었다. 박문승님이 밥값을 지불하셨다. 고마운 일이고 그이후 나는 또한번 신세를 졌다. 휴게소 아주머니가 공기밥 추가분 3천원을 받지 않은 것도 특이한 일이다. 생색도 안내고 그냥 무료제공했을리는 만무하고 잊어 버린 것 같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곧 출발하자 한다. 조금만 쉬었다 가고 싶은데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가야할 길을 .....,
30분전 까지만 해도 아픈줄 모르고 달렸던 다리 그부분(엉치뼈?)에 또다시 통증이 온다. 곧바로 달릴 수 없어 타 팀원들은 벌써 저만치 200m 전방을 달리는데 난 걷고 있다. 더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아픈 부분을 맛사지 하며 천천히 달리다 보니 어느 정도 통증도 가시고 달릴만 하다.
아 그런데 선두 주자들을 놓친 것이다. 첫번째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양평 읍내에서 용문방향으로 향하는 6번 국도 진입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잘못 된 길로 오지 않았는가 의심하며 여주방향 이정표가 있는 끝지점까지 오니 왼쪽으로 6번 국도 진입로 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반가운 마음에 굴다리를 지나 6번 국도에 오르니 가로등도 없고 차량의 통행도 거의 없다. 일직선을 쭉 뻗은 길이기에 반딧불이를 붙인 팀원들의 모습의 보이련만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다. 이내 안심이 되지 않는다.
약 1시간후 팀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 얼굴들인지 ! 이제는 안심하고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내닫기를 약 5시간후 용두에 도착하였다. 계획된 시간보다 3시간정도 늦게 도착하였으나 그리 늦은 건 아니다고 자위했다. 앞으로 닥쳐올 험산준령을 예기치 못한 순진한 생각이었다.
용두에서 된장찌게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쉬었다 달리는데에는 시동을 거는데 5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중에 나의 "시동을 건다"는 말은 애닲은 유행어가 되었지만, 달릴때에는 엉치뼈가 아픈것을 거의 참으며 달릴 수 있는데 일단 쉬면 통증이 재발하여 다시 달리기 까지는 심한 통증으로 약 5분정도는 마사지 하며 약간 속보로 걷다가 어느정도 적응후 달려야 했다.
자연히 남들은 출발후 곧바로 달리는데 나는 5분이라는 시간을 지체해야 되니 같이 달리는 일행에게는 나는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달리고 싶어도 출발한후 벌써 600 ~ 700m 차이가 나버리니 짜증도 나고 한심하기 까지 했다.
어쨋든 일행은 멀리가고 쉬지 않고 30여분을 달리니 이귀자님이 홀로 뛰고 있다. 역시 발바닥이 열이 나고 발목 부분에 통증이 있어 달리기 힘들다 한다. 지난 7월16일 105.48km 달릴 때에도 거의 전구간을 같이 달린 경험이 있는 토라 같이 달리며 호흡을 맞추어 달렸다.
달려도 달려도 서경석님등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약 1시간쯤 가니 서경석님이 보였다. 조금 쉬었다 가자고 해도 어린애게 장난을 치는 것처럼 조금 가까이 다가가면 더 빨리 뛰고 하며 우리를 조급하게 했다. 내심 미웠다. 그러나 그의 깊은 속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순간의 안주를 억제할 줄 아는 깊은 배려일 것이다.
달리다 보니 이제 조금만 더가면 횡성으로 접어드는 길이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산이 앞을 가로 막는다.
약 2간을 쉬지 않고 달려서 인지 다리와 발가락의 통증때문에 도저히 서경석, 이귀자님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천천히 달리기로 하고 먼저 가라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래도 내가 왜 뒤떨어져 하는 자존심과 함께 한편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패배감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그순간은 거의 절망 상태였다. 다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지니 의지력도 약해지는 듯 했다. 거의 속보수준으로 꼬불 꼬불 산허리를 돌아 횡성 입구 표지판이 보이는 순간 힘이 솟아 남을 느겼다.
그러나 아뿔사 왼쪽 발의 엄지발가락 부분에 심한 통증이 있다. 양말을 벗어 보니 물집이 발가락 밑으로 터지지 않고 발톱 뿌리부분을 뚫고 나와 발톱이 들려 버렸다. 양말을 벗고 반창고로 바톱을 다시한번 꼭 동여맨후 김용주님이 준 타이트한 나이키 양말을 신고 다시 달리려 했으나 통증은 가시지 않는다.
약 5분간 걸으며 잠시 흥분을 가라않히는 순간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서경석님 전화였다. 어디냐 한다. 위치를 듣더니 약 5분거리 카페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한다. 반가운 마음에 힘을 내어 달리려 했으나 아픈 발가락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몇시간만의 만남, 반갑기 그지없다. 50년을 헤어져 살아온 동포의 아픔이 어찌 크지 않으랴 !. 서경석, 이귀자님도 나만큼 지쳐 있고 잠을 못잔 탓에 탈진 직전이다.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음식을 먹고 기운을 회복하고 달렸으면 좋으련만(박문승, 박영도님은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그 카페에서 음식을 먹고 출발했다 함) 서경석님은 조금만 산아래로 내려가면 좋은데가 있으니 거기가서 먹자한다. 왜이리도 먼지 윤장웅님의 보고서에서 언급되었듯이 잠을 안자고 달리니 눈이 감기며 허상이 보인다. 주저않고 싶고 약 3km 정도 되는 식당까지의 길이 왜이리도 지루한지 몰랐다.
식당에는 우리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인심이 좋은 곳이다. 식사후 휴식을 취하고 어느정도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새벽 2시 55분입니다. 졸작이지만 오늘 밤을 다 새서라도 보고서를 올리려 했으나 무리인 듯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가다듬어 후편은 성의있게 작성하겠습니다. 혹 문법에 맞지 않거나 맞춤법에 어긎나는 부분은 이글을 인쇄하여 수정한후 다시 올리겠습니다.
2000. 9.21. 02.55.
종로구청 마라톤동우회 정해성 올립니다.
한반도 횡단 서해에서 동해까지 팀원으로서 아름다운 산하를 돌아보며 그힘들땐 쉬엄 쉬엄 여유있는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전국의 네티즌 마라토너 여러분 ! 우리는 성도, 사는 모습도, 지향하는 바도 각자 다르지만 "마라톤"이라는 고리에 끈근하게 연결되어져 대회 때마다 보이지 않으면 아쉬워 하며 혹시 ? 다음대회에는 하고 은근히 기다려지는 그런 숙명적인 관계라고 생각됩니다. 어찌보면 친구 만큼이나 가까운 동지사이입니다.
달리기가 좋아서 대회마다 가리지 않고 즐겨나가다 보니 이제는 종교활동도 부모님 찾아 뵙는 일도 줄어들었고, 급기야 금번 추석연휴도 저의 아내와 어린 남매(민지,원식)가 부모님께 저대신 혼을 나는 신세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남편하나 잡지 못해 밖으로 나돌게 하느냐 ?, 왜 말리지 않았느냐 !. 등 등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답니다.
금번 한반도 횡단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성공을 기원해주시고 지켜봐 주신 네티즌 마라토너 선배님들께 늦게 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인사말을 올리는데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줄 몰랐습니다. 서로를 다독거려 주고 순전한 호감을 갖고 상대에게 아량을 베풀수 있는 여유가 절실히 필요할 때 입니다.
아픈 다리를 감싸고 애닲게 한걸음 한걸음 속보로 달리며 완주하였던 윤장웅님, 태기산 내리막길에서는 발목의 통증때문에 서로 의지하고 내려갔던 처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라톤 동호인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하여 열심히 기억을 되살리며 대장정의 완주기를 작성해 주신 님의 열과성에 놀라운 마음은 물론 시샘까지 생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근 3일간의 힘든 역정속에서 이같은 일을 세세하게 기록하여 동호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 윤장웅님 !
저는 금번 한반도 횡단팀원으로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동시대를 사는 마라톤 동지로서 심심한 존경의 의사를 표하고자 합니다.
윤장웅님께서 장편의 보고서를 올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되기에 저는 간단하게 제 나름대로 느낀 점을 소개함으로써 보고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졸작이오니 이해 바라오며 편의상 경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가끔 "나"라는 용어를 사용할 터이오니 넓으신 이해바랍니다.
1.횡단팀에 합류하게된 동기
학창시절 부터 잘하는 운동하나 없고 대학입시 체력장에서는 12점밖에 못받은 운동에 열등생이었던 저는 운동신경은 뒤져도 남들에 비하여 의지력하나는 안뒤진다는 생각을 막연이 나마 갖고 있었는데
5년전 우연히 마라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재미를 붙여 이제는 스피드 러너쪽 보다는 초장거리를 선호하는 달리기를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고 금년 63.3km와 105.48km를 무사히 달리고 나니 달리는게 좋아 막연히 나마 더 먼거리도 달렸으면 했는데
이용식님이 기회를 제공하여 수일간 고민하다가 참가키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부상의 쓰라림과 달리지 못하는 고통을 삭이며 금번 횡단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동행하여 주신 이용식님에게 늦으나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 한반도 횡단을 위한 준비내용 보고
이제와 생각해 보니 75시간 30분이나 걸렸던 것은 준비부족이 크나큰 요인이었습니다. 준비에는 마음가짐과 달릴 수 있는 체력, 각종 장비등이 겠지만 ......,
저는 금번 저의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안이한 정신자세"와 "겸손치 못한 준비"였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물론 남들과 같이 세레또레 배낭, 우의, 손전등, 경광등 같은 기본 장비는 다 구입하였으며 배낭에 물통을 넣고 직접 산을 달리기도 하며 어느 정도 준비는 했다고 자신했으나 치밀한 작전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횡단팀원의 일원이었던 송인호님의 경우는 위치별 통과시간표와 지도까지 상세하게 준비하였고 윤장웅님의 경우도 치밀한 준비를 하였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저는 105.48km 달린 기록을 근거로 적어도 아무리 배낭을 메어도 43시간내에는 달릴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여 지도하나도 준비치 않았으며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있게 신축적으로 달릴 것이라고 제자신을 과대평가하였습니다만,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저에 대한 무지의 소치였었습니다.
지금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저자신에 대하여 겸손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가지, 남들은 구급약을 준비했는데 의약품이라고는 저는 반창코와 맨
맨소래담, 바세린 뿐이었습니다. 첫째날 발가락 통증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었음은 당연한 결과였었습니다.
3. 드디어 한반도 횡단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첫째날 새벽 5시 강화 창후진의 약간 쌀쌀한 날씨와 어둠을 뚫고 의기양양하게 횡단의 첫발이 내딛어 졌습니다.
지나는 사람도 차량의 통행도 거의 없는 길을 인근 마을에서 개들의 울음소리만이 적막을 깨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속 7km 속도 준수가 되지 않고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떨어져 가기에 저는 중간쯤에서 달리며 속도를 준수하도록 팀원들을 독려하였으나 처음이라서 힘이 남아서 인지 막무가내 였습니다.
팀웍의 중요성이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서로가 오랜 기간동안 사귀어 이해를 잘하는 팀원도 있지만 만난지 몇번 안되는 팀원도 있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금번 한반도 횡단팀의 출발전에 가급적이면 몇번정도 멤버쉽모임을 가졌으면 했었는데 그리 못한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동이 터올때 어느덧 강화읍에 도착했습니다. 강화대교를 지나며 48번 국도를 접어드니 선두(박문승, 박영도, 이용식님 등)와의 거리간격이 더욱더 나 가시권에서 완전히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도 저는 서경석, 이귀자, 김용주, 김호곤님등 후미 그룹 팀원들과 함께 같이 하며 조급하지 않게 달렸습니다. 오전 9시경 부터 태양이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망사 흰색 모자가 요긴하게 쓰여질 차례였습니다. 옆에 모 팀원은 검정색 모자(본인 말로는 비싸게 구입했다 함)를 준비해와 쓰다가 저에게 핀잔을 들었습니다.
'98년도 경주 동아마라톤대회때 경험인데 25도를 웃도는 더위에서 철없이 검정모자를 착용하고 달리다가 머리에 열이나서 고전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난 일이지만 그 팀원은 무사히 완주하였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48번 국도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적절한 언덕과 평지가 잘 조화 되어 달리기에는 안성 마춤이었습니다. 김포평야의 들판을 가로지며 무념 무상으로 그저 달리기만 하였습니다.
반대편으로 달려오는 차량들을 주시하며 달리느라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의 벼들을 바라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한번도 가져 보지 못하였던 점입니다.
어느덧 통진면에 이르럿을 때 선두와의 간격이 너무 벌어졌음을 느껴 후미그룹의 상황도 알릴겸 먼저 달려가기로 서경석님에게 알리고 속도를 내어 달렸다.
한 20분쯤 달렸을 까 어느 고개에서 채흔호 님이 보였으며 벌써부터 기운이 없어 보이며 다리가 부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채흔호님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지체하지 않고 언덕을 넘어 5분여를 가니 윤장웅님이 거의 걷듯이 가다가 나를 보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야속했지만 열심히 달리고 달리다 보니 5분만에 같이 달릴 수 있었으며 채흔호님과 동일한 언질을 준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를 20여분 지속하니 서울입구인 고가도로밑에 도착하였습니다.
먼저 도착한 팀원들이 약 10분전에 도착했다 하며 후미팀원들을 위하여 기다렸다 한다. 도착후 땀을 씻으려 하는 찰나에 어느새 이귀자님이 저만치서 달려온다. 철녀, 울트라우먼이라고 말해도 손색없는 분이다.,
고가도로밑에서 기다리는데 약간 기분이 우울한 이야기를 들었다. 팀원중 누군가가 후미그룹이 너무 늦게와서 피해를 준다며 약간 불평하는 말을 하여 난 그 즉시 분위기를 고려하여 서로 감싸주며 위해줄것을 권유하였다.
이번에도 역시 팀웍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약 15분 정도 기다리니 진짜 후미의 팀원들이 들어왔다. 서경석님은 2시간 50분대의 풀코스 기록을 가진 실력자임에도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하여 후미주자 3분을 계속 끌어 안고 뛰셨다. 적어도 강화도에서 개화동 입구까지는 마일다.
나는 그렇게는 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각종 마라톤대회에서 페이스 매이커를 자청하는 사람들과 달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남을 위하여 자원봉사해주는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로 보여진다.
개화동입구에서 개화동중심가 까지의 길은 찻길이 위험하여 보도를 통하여 거의 걷다시피하며 약 10분이 소요되었고 우리는 이용식님이 안내하는 음식점에 도착하여 설렁탕으로 점심을 해결하였으며 지체된 시간을 고려하여 거의 쉬지않고 한강 진입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식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곧바로 달리지 않고 걷기로 하고 아파트 옆길, 공사장 주변, 비포장도로 등 약 15분을 속보로 전진하니 드디어 한강 진입을 알리는 굴다리가 나온다.
반가웠었다. 익숙한 한강길이 아닌가 !
한강,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 하도 많이 달렸기 때문이리라. 춘천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에 5번째 출전하는 나는 첫번 출전때부터 계속 코스를 답사하였다.
이제는 코스도 어느정도 익숙할텐데 돈 들고 왜 답사하느냐는 아내의 애교석인 핀잔에도 난 올해에도 답사를 할 것입니다. 그만큼 눈에 익숙하면 달리기 쉽기때문입니다.
한강에 접어드니 먼저 눈에 띄는 건 흙먼지길이었습니다. 희뿌연 흙먼지 사이로 역시 또 한무리의 선행 팀원들이 500여 미터 전방에서 마악 한강에 접어든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달릴테면 달려보라지 , 저는 혼자 말을 하며 묵묵히 달렸습니다. 그때까지는 페이스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김포부근에서 생긴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물집외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습니다.
양화대교 부근에 도착했을 무렵 그만 물집이 생겼던 엄지발가락 부분이 퉁퉁 부어오르며 오른쪽 신발앞부분을 꽉 조이게 하여 달리는데 너무 부자연 스런 동작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오른 쪽 아픈 발보다는 왼쪽 발에 약간의 힘을 싫어 달리다 보니 여의도 부근에 오니 이미 왼쪽발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며 역시 부어올랐습니다.
증상은 오른쪽 발과 똑같았으며 신발을 벗고 싶을 정도로 꽉조여 달리기에 너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영등포 육상연합회 회장님 이하 회원님들의 격려가 있었기에 정신적으로 해해이해지기 쉬운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기에 이자리를 빌어 영등포육상연합회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의도에 도착하니 위 단체의 회장님등 몇몇 회원님들이 윤장웅님 응원명목이었지만 우리 모두를 환영하며 포도, 바나나 등을 제공하며 힘을 북돋아주었습니다.
저는 그사이에 아픈 발가락사이에 바셀린을 바르고 반창고를 칭칭 감았습니다. 어리석게도 구급약을 가져가지 않아 발에 동통이 생기는줄을 모르고 화를 자초했습니다. 양쪽 엄지발가락은 아직도 얼얼하며 동상걸린것처럼 진물이 나오며 나무조각처럼 단단하고 감각이 없습니다. 당분간 달리지 못하여 속상합니다.
서울마라톤 엄우용님의 답답했던 심정을 알것 같습니다.
반창고를 감은 덕분인지 통증을 모르고 달리는데 반포대교쯤 가니 오른쪽 엄지발가락에서 찌릿하는 통증이 있었습니다. 주사를 맞을 때 보다 약간 아픈 수준이었으며 물집이 터지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으며 이제는 통증이 사라지겠구나라는 안심을 하며 그냥 달렸습니다.
그런데 부은 부위는 가라않지 않고 통증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때 서경석님이 이제 부터 달리는 거야 하며 좀더 스피드를 내어 선두팀을 따라가자 제의하였습니다. 지난 7월 16일 서경석, 이귀자, 저 3명이 105.48km를 동반주한 익숙한 길이기에 그리하마 쾌히 승락하고 스피드를 내어 달리다 보니 어느덧 성수대교 부근에 도착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버페이스였습니다. 선두그룹들이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 성수대교 밑에서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보고 먼저 가라고 하는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6명의 선두그룹을 뒤로하고 광진교 방향으로 달리기를 계속하다 보니 잠실 토끼굴 못미쳐서 어느 아주머니가 우리들 뒷편에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5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변변한 체육복 복장도 안갖춘 거의 평상복 차림인데 우리를 앞질러 간다.
서경석님은 아주머니와 같이 달리는데 나는 실력이 되지 않는다. 일부러 페이스 배분을 위하여 뒤쳐졌다. 약 50m 뒤쪽으로 . 어느덧 광진교 부분에 다다르니 아주머니는 오던길을 되돌아 간다하며 훌쩍 떠나간다. 되돌아가는 모습이 여유있고 부러워 보였다.
광진교부근에서 약 10분정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박문승님이 거의 탈진상태에서 걷다시피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박수를 하며 맞이하고 거의 쉴 쉬간을 주지않고 한강의 마지막 자전거길 끝인 구암정을 향하여 달렸다. 날은 어두워지고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서경석님과 이귀자님이 나와 박문승님을 놓아두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윤장웅님의 보고서에 약간 언급이 되어 있듯이 서경석, 이귀자, 정해성 이 세사람은 달리는데 한편으로는 견제를 하고 밀어주고 하는 동지애가 두터운것을 느낀다. 후술하겠지만 서경석님에게 금번 완주의 공을 돌리고 싶다. 그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아마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어둠속으로 갑자기 사라져 버린 두명의 경쟁자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박문승님을 챙기며 달리려 했다. 먼저 가라한다. 자신은 조금 쉬면서 페이스 조절을 하며 천천히 달리겠다 한다.
마지못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재촉하여 선두팀을 쫒아갔다. 보이지 않는다. 약 500여 미터나 떨어져 있나 보다. 구암정으로 향하는 길옆은 유난히 갈대가 많은 지역이었다. 나중에 아내와 함께 걸을 계획이다.
약 5분을 달리니 저만치에서 자전거를 탄사람이 오고 있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인사하고 앞선 주자의 위치를 물으니 약 200m 전방을 두사람이 달리고 있다 한다. 더욱더 힘이 솟았다. 불과 3분후 구암정에 도착하였다.
도착후 먼저 핸드폰으로 집에 전화를 했다. 강건너 편 산기슭에서 어느 이름모를 트럼펫주자의 구성진 음률이 들려온다. 참 여유있게 세상을 관조하며 사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구청 마라톤 동우회 부회장 김성철씨도 마라톤 외에 갖가지 취미를 갖고 있는 분이다. 역시 트럼펫 수준급으로 우리구청 보컬팀의 일원이기도 하다.
박영도님, 송인호님, 윤장웅님등 속속들이 도착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이용식님은 도착하지 않는다. 핸드폰을 걸어보니 곧 도착할 것이라 하여 안심이 되었는데 도착하는 모습은 여간 애처롭지 않다.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으며 질질 끌다시피 하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자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미사리까지 가서 저녁을 드십시다. 이용식님의 제안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조안정도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는 것이 맞는데 계획보다 약 3시간 정도 늦은 모양이었다.
약 5m 정도의 경사길을 기어 올라 오니 올림픽 대로가 나온다. 차들이 씽씽 달리니 겁이난다. 차로 달리기를 포기하고 보도위에 올라가 달렸다. 채흔호님은 보폭이 길고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나는 걷지 않고 계속 달리는데도 그분의 걷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배도 고프고 지칠대로 지친 우리에게 미사리 주변의 음식점은 탄수화물 식보다는 순 육류만을 취급하는 곳만 있었다. 일행의 대다수가 선택한 음식점을 윤장웅님은 안간다 한다.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그러나 주변에 된장찌개등을 하는 집이 없는 듯하여 아쉬운 대로 들어가 보니 왠걸 주인이 마음이 착하여 우리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전문은 아니지만 두부에 된장찌개를 해주었다. 남들은 다 든든한 식사를 하였으나 박문승님과 나는 겨우 한공기를 비우는데 그쳤다.
어는 정이 넘치는 팀원이 나와 박문승님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빛으로 식사를 더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밥이 들어 가지 않는다. 속이 답답하고 토할 것만 같았으며 발가락은 더욱더 부어 걱정만 더하였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고마운 식당을 뒤로 하고 팔당대교쪽을 향하였다.
아 ! 500m도 못가서 달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음을 깨닳았다.
왼쪽 엉치뼈(정확한 명칭을 모름.) 부근에 통증이 엄슴해 오며 달리고자 하나 통증때문에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를 정도로 달릴 수 없게 하였다. 이미 선행팀원들은 500m 앞을 지나고 있고 나는 나보다 더 부상이 심한 이용식님이 뒤에서 오면 같이 합류할 요량으로 속도를 늦추어 걷다시피 해도 이용식님을 보이지 않았다.
팔당대교를 지나 첫번째 터널을 통과후 두번째 터널에 들어가니 터널의 끝부분에 누군가가 보였다. 이제야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는 희망이 생겼다. 아픈 다리를 생각치 않고 오기로 조금씩 발돋움하며 달렸다. 점점 거리는 가까워 졌으나 통증은 예사롭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리석은 행위였다. 다리에 무리한 힘을 주었던 것이다. 그때 가져갔던 맨소래담이라도 발라줄 것을 하는 후회감도 든다.
세번째 터널에서 완전히 팀원과 합류를 하였고 마지막 6번째 터널을 지나면서 부터는 분위기상 스피드 경쟁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동안 일정보다 늦게 달렸기때문에 48시간내 도착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느낀 팀원중 일부가 갑자기 대오를 이탈하여 뛰쳐 나갔다. 박문승, 서경석, 이귀자님 이었다. 나도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통증도 모르고 갑자기 그들의 뒤를 따라 가다가 500m도 못가서 추월하여 양평 20km지점 부터 8km 지점까지는 혼자 달릴 정도로 스피드를 높여 달렸다.
양평 8km 남은 이정표 표지부근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금번 한반도 횡단팀원중 젊은 측에 드는 박영도님 이었다. 깜짝 놀랐다. 서경석님, 박문승님, 이귀자님이 내뒤에 곧바로 도착할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의외의 일이었다. 약 20분을 그와 스피드를 같이 하며 달리다가 지쳐 탈진 직전에 갔다. 역시 나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탈진의 초기증상인 구토가 있었고 오한이 오는 관계료 박영도님이 잠시 나를 보살펴 주었다.
한참을 지난후 서경석님등 일행이 도착하여 우리는 근처의 휴게소에 들러 따끈한 식사를 하였다. 입맛은 역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사리 저녁식사때 처럼 걱정 스런 말을 또한다. 그러나 밥이 들어가지 않는다. 남들은 두그릇씩 먹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 그지없었다. 박문승님이 밥값을 지불하셨다. 고마운 일이고 그이후 나는 또한번 신세를 졌다. 휴게소 아주머니가 공기밥 추가분 3천원을 받지 않은 것도 특이한 일이다. 생색도 안내고 그냥 무료제공했을리는 만무하고 잊어 버린 것 같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곧 출발하자 한다. 조금만 쉬었다 가고 싶은데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가야할 길을 .....,
30분전 까지만 해도 아픈줄 모르고 달렸던 다리 그부분(엉치뼈?)에 또다시 통증이 온다. 곧바로 달릴 수 없어 타 팀원들은 벌써 저만치 200m 전방을 달리는데 난 걷고 있다. 더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아픈 부분을 맛사지 하며 천천히 달리다 보니 어느 정도 통증도 가시고 달릴만 하다.
아 그런데 선두 주자들을 놓친 것이다. 첫번째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양평 읍내에서 용문방향으로 향하는 6번 국도 진입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잘못 된 길로 오지 않았는가 의심하며 여주방향 이정표가 있는 끝지점까지 오니 왼쪽으로 6번 국도 진입로 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반가운 마음에 굴다리를 지나 6번 국도에 오르니 가로등도 없고 차량의 통행도 거의 없다. 일직선을 쭉 뻗은 길이기에 반딧불이를 붙인 팀원들의 모습의 보이련만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다. 이내 안심이 되지 않는다.
약 1시간후 팀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 얼굴들인지 ! 이제는 안심하고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내닫기를 약 5시간후 용두에 도착하였다. 계획된 시간보다 3시간정도 늦게 도착하였으나 그리 늦은 건 아니다고 자위했다. 앞으로 닥쳐올 험산준령을 예기치 못한 순진한 생각이었다.
용두에서 된장찌게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쉬었다 달리는데에는 시동을 거는데 5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중에 나의 "시동을 건다"는 말은 애닲은 유행어가 되었지만, 달릴때에는 엉치뼈가 아픈것을 거의 참으며 달릴 수 있는데 일단 쉬면 통증이 재발하여 다시 달리기 까지는 심한 통증으로 약 5분정도는 마사지 하며 약간 속보로 걷다가 어느정도 적응후 달려야 했다.
자연히 남들은 출발후 곧바로 달리는데 나는 5분이라는 시간을 지체해야 되니 같이 달리는 일행에게는 나는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달리고 싶어도 출발한후 벌써 600 ~ 700m 차이가 나버리니 짜증도 나고 한심하기 까지 했다.
어쨋든 일행은 멀리가고 쉬지 않고 30여분을 달리니 이귀자님이 홀로 뛰고 있다. 역시 발바닥이 열이 나고 발목 부분에 통증이 있어 달리기 힘들다 한다. 지난 7월16일 105.48km 달릴 때에도 거의 전구간을 같이 달린 경험이 있는 토라 같이 달리며 호흡을 맞추어 달렸다.
달려도 달려도 서경석님등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약 1시간쯤 가니 서경석님이 보였다. 조금 쉬었다 가자고 해도 어린애게 장난을 치는 것처럼 조금 가까이 다가가면 더 빨리 뛰고 하며 우리를 조급하게 했다. 내심 미웠다. 그러나 그의 깊은 속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순간의 안주를 억제할 줄 아는 깊은 배려일 것이다.
달리다 보니 이제 조금만 더가면 횡성으로 접어드는 길이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산이 앞을 가로 막는다.
약 2간을 쉬지 않고 달려서 인지 다리와 발가락의 통증때문에 도저히 서경석, 이귀자님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천천히 달리기로 하고 먼저 가라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래도 내가 왜 뒤떨어져 하는 자존심과 함께 한편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패배감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그순간은 거의 절망 상태였다. 다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지니 의지력도 약해지는 듯 했다. 거의 속보수준으로 꼬불 꼬불 산허리를 돌아 횡성 입구 표지판이 보이는 순간 힘이 솟아 남을 느겼다.
그러나 아뿔사 왼쪽 발의 엄지발가락 부분에 심한 통증이 있다. 양말을 벗어 보니 물집이 발가락 밑으로 터지지 않고 발톱 뿌리부분을 뚫고 나와 발톱이 들려 버렸다. 양말을 벗고 반창고로 바톱을 다시한번 꼭 동여맨후 김용주님이 준 타이트한 나이키 양말을 신고 다시 달리려 했으나 통증은 가시지 않는다.
약 5분간 걸으며 잠시 흥분을 가라않히는 순간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서경석님 전화였다. 어디냐 한다. 위치를 듣더니 약 5분거리 카페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한다. 반가운 마음에 힘을 내어 달리려 했으나 아픈 발가락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몇시간만의 만남, 반갑기 그지없다. 50년을 헤어져 살아온 동포의 아픔이 어찌 크지 않으랴 !. 서경석, 이귀자님도 나만큼 지쳐 있고 잠을 못잔 탓에 탈진 직전이다.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음식을 먹고 기운을 회복하고 달렸으면 좋으련만(박문승, 박영도님은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그 카페에서 음식을 먹고 출발했다 함) 서경석님은 조금만 산아래로 내려가면 좋은데가 있으니 거기가서 먹자한다. 왜이리도 먼지 윤장웅님의 보고서에서 언급되었듯이 잠을 안자고 달리니 눈이 감기며 허상이 보인다. 주저않고 싶고 약 3km 정도 되는 식당까지의 길이 왜이리도 지루한지 몰랐다.
식당에는 우리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인심이 좋은 곳이다. 식사후 휴식을 취하고 어느정도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새벽 2시 55분입니다. 졸작이지만 오늘 밤을 다 새서라도 보고서를 올리려 했으나 무리인 듯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가다듬어 후편은 성의있게 작성하겠습니다. 혹 문법에 맞지 않거나 맞춤법에 어긎나는 부분은 이글을 인쇄하여 수정한후 다시 올리겠습니다.
2000. 9.21. 02.55.
종로구청 마라톤동우회 정해성 올립니다.
추천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